어쩌면 나를 위한 의전
나는 속도를 즐겼다. 정확히는, 속도에 기대었다.
숨 막히는 일상, 꽉 조여 오는 심장, 답답한 직장.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과속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이었다. 발끝 하나로 다른 생각을 밀어낼 수 있었으니까.
시내 주행에서는 그게 잘 안 됐다. 신호는 자주 걸리고 차는 늘 막혔다. 짜릿함은 끊겼고, 나는 더 조급해졌다.
북악스카이웨이의 주행 호흡은 속도를 즐기기에 충분히 길었다. 굽이굽이 진 도로는 도전 미션처럼 이어졌고, 나는 그걸 하나씩 통과하는 기분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곳에서 나는 해방으로 가는 틈을 발견했다. 나는 그 틈을 출구라고 착각했다.
흥이 오를 대로 올라, 여느 때처럼 빠르게 북악스카이웨이를 질주하던 어느 날이었다. 맞은편 도로에서 차량 한 대가 문자 그대로 뒤집혀 있었다.
어떤 날은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추월을 하다가 내 차와 정면충돌을 할 뻔했다. 정말 가까웠다. 종이 한 장 차이 같았다.
그때 알았다. 사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늘 그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변화를 결심했다.
하지만 습관이 된 속도와, 즐기기 시작한 짜릿함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정신과 주치의와 상담을 했다.
처방은 단순했다. ‘인형 의전.’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조수석에 모시고, 누군가를 의전하듯 운전해 보라는 거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큰 푸바오를 모셨고, 말 그대로 의전을 시작했다.
푸바오 인형은 부피가 상당해서 조수석에 앉히는 순간 진짜 VIP 같았다. 안전벨트도 매 줬다. 인형인데도.
푸바오를 모시고 과속방지턱을 넘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웃기다. 속도를 줄이고, 차가 덜컹일까 봐 한 번 더 브레이크를 밟는다. 심지어 나는 오른손으로 “어이쿠” 하며 조수석 쪽을 막아준다. 인형인데도.
나는 판다를 꽤 좋아한다. 2025년에는 거의 매주 동물원을 갔다.
그래서 내 차에서 푸바오는 그냥 인형이 아니라, 그야말로 VIP다.
VIP를 모시니까 운전이 바뀌었다.
속도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태도를 바꾸는 쪽이었다.
푸바오가 놀라지 않도록 큰 소리로 음악 듣지 않기.
과속은 절대 금지.
급출발, 급정거 금지.
나는 차를 빠르게 몰지 않고 안전하게만 몰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