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신발을 벗어야만 출발할 수 있었다.

by 서희

10년 넘게 장롱면허였다.
차도 없었고, 운전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 차를 샀고, 자차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이제 더 늦으면 평생을 운전하지 않고 살아가게 될 것 같았다.


도로연수는 10번 넘게 받았다.
핸들을 잡는 법은 배웠고, 차선도 지킬 수 있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출발하는 순간에 힘 조절이 제일 어려웠다.
차의 속도는 들쑥날쑥했고, 일정 속도로 주행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운전을 하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내 몸이 내 차보다 앞서 달리는 기분이었다.

정지하는 순간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평온한 도로에서 나는 의도치 않은 급정거를 반복했다.
브레이크는 늘 ‘적당히’가 아니라 ‘끝까지’로 가 버렸다.


문제는 발이었다.

신발을 통해 페달을 밟는 느낌은 늘 한 겹 멀었다.
엑셀을 얼마나 밟았는지, 브레이크가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그 ‘정도’가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맨발로 운전을 해 봤다.

드디어 차와 내가 이어진 기분이 들었다.
페달이 읽혔고, 발바닥으로 압력이 들어왔다.
영화 아바타에서 꼬리 끝으로 교감하는 장면처럼—조금 우스운데, 진짜 그랬다.

동승자가 생기면 늘 한 번씩 멈칫했다.
“그거 안전한 거 맞아?”
나는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만 운전이 된다고.

접촉사고들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리기 전, 한쪽 신발을 차 밖으로 툭 던졌다가
급히 다시 신었다.
괜히 맨발이 사고의 원인인 것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 범인처럼 느껴져서 눈치를 봤다.


그 습관은 수개월을 이어졌고,
족히 일 년은 넘었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의원에 갔다.
침을 맞다가 발에도 놓아야 한다고 했다.

별생각 없다가, 아 맞다 싶었다.

맨발로 운전하면 뒤꿈치가 새카매진다.
도장처럼 둥글게.

나는 엎드려 있었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마음속으로 이불킥을 백 번쯤 했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붙였다.
아, 제가 맨발로 운전을… 출퇴근이 좀… 신발이…

한의사 선생님은 그냥 웃고 마셨다.

그 사건 이후 바로 맨발 운전을 중단한 건 아니다.


부끄러움 하나로 습관이 멈추진 않았다.

다만 어쩌다 맨발이 불가능한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동승자가 있어서, 발이 시려서.
그런 날엔 그냥 신발을 신고 운전했다.

처음엔 다시 멀어졌다. 페달이 둔해졌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쌓였다.
한 번, 두 번, 열 번.
어느 순간부터는 신발을 신은 발도 페달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발을 신고도 운전할 수 있다.
굳이 벗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가끔,
신발을 신은 발이 페달을 밟고 있는 걸 보면
혼자 실소가 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아니까.


어떤 문은 한 번에 열리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여러 번에 걸쳐서,
기어코 문을 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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