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나를 축하하기로 했다

기쁨을 미루지 않기로 한 사람의 14일

by 서희

나는 한여름에 태어났다.
대한민국 대부분이 휴가를 떠나는 불볕더위 한가운데.
학창 시절, 생일은 늘 방학이었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 적은 없다. 교실에서 축하 노래를 받아본 기억도 없다. 생일은 그냥, 지나가는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남의 생일을 유난히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다.
SNS 알림이 없어도 가까운 사람들의 날짜는 기억한다. 애매한 사이라도 생일이라고 인식하면 메시지라도 남긴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생일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잊지 않고 챙기는 사람이 몇 있다.

한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지난 직장의 맏선임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짜이기도 하고, 나의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톤 앤 매너를 그에게 배웠다. 나에게는 멘토에 가깝다. 그래서 누구보다 정성껏 축하한다. 날짜가 다가오면 미리 생각해 둔다. 어떤 문장을 보내야 할지, 어떤 안부를 덧붙일지.

또 한 사람은, 중국 드라마에서 말하는 ‘반려광’ 같은 존재다.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이루지 못한 사랑. 내가 처음 사랑한 사람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많이 원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담백하게 나를 세 번 거절한 사람이다.

“너는 나에게 좋은 동생이야.”

흔한 말이었지만, 이후의 관계는 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가족 밖의 가족처럼 나를 아껴준다. 세 번째 거절을 듣던 날, 우리는 약속했다. 이 좋은 동생이 기억하는 한, 오빠의 생일은 챙기겠다고.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킨다.

나는 그렇게 남의 생일을 챙긴다.
빠짐없이. 이유 없이. 정성껏.

반면 나의 생일은 늘 공교롭기만 했다. 한여름 휴가 시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휴가에 집중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의 몫까지, 내가 나를 축하해 주기로 했다.

앞뒤로 7일씩 붙여서 생일 주간을 만든다.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붙인다. 같은 밥을 먹어도 “생일 주간이니까 더 맛있게 먹어야지” 같은 기분이 된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생일 주간임을 선포(?)하고, 축하할 기회를 준다. 선물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를 축하해 주는 마음이 고픈 것이다. 일 년에 딱 2주.

대한민국이 가장 뜨거운 달에 나는 전기세 걱정을 잠깐 접고 에어컨을 망설임 없이 켠다. 오밤중에 물회를 시켜 먹기도 한다. 갑자기 연차를 쓰고 서해나 동해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즐긴다.

늘 달지 않은 라테만 마시는데, 생일 주간에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한다. 대기업 소속 바리스타의 노력의 산물인 몹시 달달하고 화려한 음료를 먹는다. 원래도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 기간만큼은 더 자유롭게 옷을 입고 출퇴근한다. SNS에서 보이는 자질구레한 신기한 물건들을 결제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어떤 날은 똥손을 부려먹어서 요리를 만들어 본다. 결과는 늘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또 생일 주간다운 맛이다.

나의 생일 주간은 그렇게 충동적이고 행복한 일들로 채워진다.

적어도 그 기간 동안 나는 기쁨을 미루지 않는다.

나는 나를 축하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