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만료일이 가까워지면 문서가 먼저 쌓인다.
연장 불가 사유, 인수인계 계획, 대체 인력 요청.
성과도 숙련도도 아닌 2년이라는 숫자가 먼저 도착한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업무는 늘었고 현장은 굴러가야 하니 손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을 남겨두기 어렵다. 이 문장은 늘 같은 자리에서 닫힌다.
2년 차가 된 계약직은 대개 잘 교육되어 있다.
현장의 속도와 기준을 이해했고, 실수를 줄였고, 말이 통한다.
가장 쓸모 있어졌을 때 계약이 끝난다.
우리는 사람을 키운 뒤, 가장 쓸모 있을 때 내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다시 초급자 인력으로 메운다.
조직은 그 반복을 ‘운영’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는 때로 낭비에 가깝다.
그 문서를 정리하는 순간마다 미안했다.
정이 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잘 길러놓고도 남겨두지 못하는 구조가 사람을 사람보다 자원에 가깝게 취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구조”라는 말 뒤에 숨는다. 그 말이 우리의 선택을 가려준다.
현장은 공백을 견딜 수 없고, 행정은 즉시 가능한 해법을 찾는다.
그때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그럼 도급으로 돌리죠.”
도급 협력업체는 취업난 속 20대에게 동아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장에는 당장 손이 필요하고, 청춘에게는 당장 월급이 필요하니까.
나도 그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도급 인력도 같은 길을 걷는다.
애송이로 들어와 몇 년을 일하며 숙련자가 된다.
일을 예측하고, 실수를 줄이고,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빠르게 파악한다.
숙련은 현장에 남지만, 그 숙련을 가진 사람은 조직 안에 들어온 사람이 되지 못한다.
어느 순간 깨닫는 때가 온다.
책임은 커지는데 권한은 생기지 않고, 역할은 늘어나는데 경력으로는 잘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떠난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감각이 쌓여서.
나는 그 현실을 숫자로만 알던 사람이다.
그러다 회식자리에서 술김에 나온 말을 들었다.
더운 여름에 전기요금이 부담돼 에어컨을 마음껏 켜지 못한다는 이야기.
겨울에는 난방비가 걱정돼 실내 온도를 낮춘다는 이야기.
투정도 아니었고, 대단한 고백도 아니었다. 그냥 담담하게 말했다.
그 담담함이 오래 남았다. 그게 일상이었다.
그날 나는 더 이상 술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계산이 끝나서였다.
‘청년의 가난은 개인의 문제’라는 말을 쉽게 붙이기 어려운 장면을, 나는 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부모 세대가 다져둔 땅 위에 뿌리내렸고,
미래 세대에게서 빌린 자양분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의 40대다.
청년들이 숨을 줄여서 여름과 겨울을 넘기는 동안,
우리는 ‘현실’이라는 말로 그 구조를 설명해 왔다.
그래서 미안함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에 가까웠다.
우리는 도급을 ‘유연한 고용’이라고 부른다.
예산을 아끼고, 리스크를 줄이고, 절차를 단순화하는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책임은 잘게 쪼개지고, 청년은 그 사이에 들어간다.
‘유연’은 보기 좋은 말이지만, 그 유연함이 아래로만 작동하는 순간들이 있다.
청년의 삶이 먼저 접히는 방식으로.
우리는 청년을 ‘채용’ 하지 않고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채용은 시간을 함께 책임지는 일이다.
사용은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는 일이다.
우리는 전자를 부담스러워했고, 후자를 합리라 불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다.
다만 내가 서명하는 문서는, 최소한 설명 가능한 문장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은 대개 아래에서 감당하게 된다.
청춘을 위한 분노는 감정이 아니다.
책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가능하면 아래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