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안정제
환기 버튼을 누른다.
마른 화이트세이지 잎 끝에 불을 붙인다.
불꽃은 금방 꺼지고, 끝이 붉게 남는다.
손에 묻을 듯한 연기가 진득하게 끌려 올라간다.
화이트세이지와 팔로산토의 향기는 몹시 매력적이지만, 그 향기만을 위해서 라이터를 들지는 않는다.
나는 향수도, 디퓨저도 즐기지 않는다.
향초도 여러 번 써 봤지만 옅었다.
투명한 향기는 나의 불안을 달래주기엔 역부족이다.
내가 원하는 건 냄새가 아니라 밀도였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것 같은 공기.
불안은 손에 잡히지 않는데, 연기는 잡힐 것처럼 보이니까.
화이트세이지를 처음 본 건 요가원이었다.
어쩐지 울고 있던 나를 위해 원장님이 태워주셨다.
그날 기억나는 건 향보다 연기였다.
칠판에 분필로 그린 듯한 하얀 연기.
흐릿한데 선명했고, 가벼운데 가라앉아 있었다.
그 밀도가 나를 안정시켰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가 시가를 피우는 장면을 유독 좋아한다.
너무나 무거워서 간신히 공중에 매달리듯 흘러가는 연기.
느리고 묵직한 그 흐름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정시켰다.
연인들의 흡연도 나는 말리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담배 연기를 불어내는 순간은, 마치 영화에서 슬로우가 걸린 것처럼 멋진 장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한 번은 윗집에서 초인종을 누른 적이 있다.
담배 냄새는 아닌데 연기가 심하게 올라와서 빨래에 다 스며서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쑥뜸 뜨고 있다”라고 말했다.
허리는 멀쩡했다.
아픈 건 다른 쪽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파트 환기장치를 먼저 켠다.
창문을 통해 초대받지 않은 연기가 윗집의 불청객이 되지 않도록.
생각해 보면 시작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나는 너무 불안했고, 집에 보이는 모기향을 전부 꺼내 불을 붙였다.
온 집안이 연기로 자욱해졌다.
목이 매워 숨 쉬기 힘들어졌을 때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는 그제야 향을 끄고 환기를 했다.
그때의 나는 연기로 불안을 덮으려 했다.
공기가 바뀌면 내가 바뀔 거라고 믿었다.
불안하고 공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몸은 먼저 반응한다.
가슴이 조여 오고, 생각이 한쪽으로 몰린다.
나는 팔로산토 나무조각을 찾는다.
불을 붙이고, 연기가 공간을 점령하는 걸 본다.
연기가 집안에 깔렸다가 사라질 때쯤이면
나는 조금은 심장박동이 안정됨을 느꼈다.
연기가 사라진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몇 분 동안, 나는 내 자리를 되찾는다.
지금도 화이트세이지와 팔로산토를 즐겨 태운다.
줄이기 시작한 건 폐암 이후다.
그래서 리미트를 걸어둔다.
화이트세이지는 이파리 몇 장.
팔로산토는 불 붙이는 횟수 몇 번.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