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물러나는 법

기록으로 남겨지는 쪽으로

by 서희

손이 떨리고 수시로 저려 와서, 미세한 작업을 진득하게 이어가는 데 무리가 생겼다.
예전엔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돋보기가 없으면 선이 흐릿하다.

나는 그 선을 놓치는 일이 부쩍 늘어갔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체득한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넘길지 말지.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나처럼 헤매고 부딪히고, 시간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진짜 자기 것이 되는 거 아닌가.

그 선택을 방해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나 아니면 안 돼.’
그 말이 습관처럼 올라왔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기술과 경험을 알려주고, 그들이 나를 발판으로 더 나은 기술자가 되게 돕는 게 맞다는 것.
그런데 마음은 자꾸 딴 데로 갔다. 뒷방으로 밀려나 무용지물이 될까 봐. ‘내 것’을 내주는 순간, 내 자리가 사라질까 봐.

하지만 깨달은 게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배우며 숏컷으로 성장하던 신입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잘나서 체득한 기술만은 아니었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제 기능을 하며, 정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기술은 내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야 했다.

이제 내 역할은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게 만드는 사람’ 쪽이었다.
먹기 좋은 푸짐한 한 상을 차려서, 후배들이 잘 먹을 수 있는 판을 깔아 주는 것.

나는 욕심쟁이 대신 관대한 백과사전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움직이기로 했다.

그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인수인계 자료 만들기.
내가 했던 고민들과 답을 정리해 전달하기.
후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작은 보상을 설계하기.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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