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처음엔 우리 팀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까칠하고 예민한 사용자였다.
그러다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조금 가까워졌다.
나는 친해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편이다.
주변에서는 그를 성질 나쁜 망아지라고 했다.
거리를 두라 했다.
몇 번 크게 싸웠다.
그래도 고마운 일도 있었고, 나는 계속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밀면 관계가 유지되는 줄 알았다.
손을 내밀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다.
최근 일 년 가까이, 그 손은 거의 나 혼자였다.
메신저 창에서 내 말풍선만 길게 아래로 내려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내밀었다.
그러다 손이 부르트고, 쩍쩍 갈라져, 피가 나는 걸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숨겼다.
상처 난 손은, 내 탓처럼 보이니까.
오늘, 그 손을 거둬들였다.
차단 버튼은 마지막 동작일 뿐이었다.
내가 거둔 건 사람보다 먼저, 내 손이었다.
—
그날 밤,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가벼운 말을 던졌다.
“잘 지내?”
잠깐 기대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온도는 된다고 믿었다.
돌아온 답장은 단호했다.
바쁘다고 했다.
그러지 말라고 했다.
제발, 이라고 했다.
그 한 단어가 가슴 중앙을 눌렀다.
나는 익숙한 계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내가 또 선을 잘못 읽었다.
내가 또 더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또 실패했다.
실패는 늘 같은 얼굴로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은 버려짐이었고,
어느 날은 설명하지 못한 채 남겨진 일이었고,
어느 날은 ‘제발’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실패는 모양을 바꾸어서 또 나를 공격했다.
나는 그 공격에 익숙해서
방패처럼 무언가를 세웠다.
먼저 막았다.
먼저 거리를 뒀다.
먼저 닫았다.
차단은 결론이 아니라, 방어에 가까웠다.
그리고 남은 건, 씁쓸함이었다.
후련함이 아니라
가능성 하나를 닫은 느낌.
손을 거둬들인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은 아직 아리고 아프다.
부르튼 자국이 남아 있고,
갈라진 틈은 늦게야 따끔거린다.
내가 불쌍한 게 아니라
이 손이 불쌍하다.
그동안 너무 오래, 너무 자주
혼자 내밀어졌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이 손부터 안아 준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내 손을 먼저 거두는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