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그들의 유니콘은 경기장에서 달릴 수 없다

유니콘

by 서희

회의실에서는 유니콘이 자주 태어난다. 말은 정교하고, 표는 반듯하고, 구조는 매끈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될 것처럼 보인다.

나는 보통 마지막에 말한다. 앞에서 이미 결론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위가 없다. 학회 활동도 활발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는 의견을 내기 전에 한 번 더 멈춘다. "근거는요?" "레퍼런스는요?" "그건 누가 말했죠?" 다 필요한 질문이다. 다만 가끔은 내용보다 자격을 먼저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에도 현장은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설명 대신 조건을 말한다.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인력은 몇 명이 필요한지, 예산은 어디서 나오는지, 승인은 누가 하는지. "여기서 막힙니다." "이 조건이면 굴러갑니다." 그 말이 나오면 일이 시작된다. 프로젝트가 생긴다.

그리고 종종, 내 이름은 뒤로 밀린다. 회의록이 공유됐고, 프로젝트 이름이 붙었고, 발표자는 정해졌다. 내 문장은 제목 없이 본문 어딘가에 남았다. 이건 억울함의 기록이 아니다. 이 판의 습관에 가깝다.

탁상에서 완성된 구조는 아름답다. 하지만 경기장에는 흙이 있다. 규정이 있다. 예측 불가능이 있다. "추가 인력 없이 가능합니다." "프로세스만 정리하면 됩니다." "일단 시작하고 보완하죠." 유니콘은 아름답다. 다만, 발굽이 약하다.

나는 유니콘을 부수고 싶지 않다. 다리에 근육을 붙이고 싶다. 그래서 아이디어 대신 조건을 남긴다. 목표, 범위, 인력, 책임자, 실패 시 복구 경로. 이 다섯 줄이 있으면 말은 줄어들고, 일은 남는다.

내 이름이 앞에 서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도 생각했다. 아직은 반쯤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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