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닮았다.
예쁜 얼굴은 아니다.
아빠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도 아빠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걸 보는 눈으로.
아빠만의 내 애칭이 있었다.
쮸쮼.
어릴 적 담요를 둘러쓰고 국자를 든 채
미스코리아 퍼레이드를 흉내 내면,
아빠는 우리 쮸쮼이가 미스코리아 진의 뺨을 때릴 만큼 예쁘다고 했다.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아빠는 단 한 번도 내게 화를 낸 적이 없다.
엉망으로 망친 시험지에 확인 서명을 위조했다가 들켰을 때조차.
혼날 줄 알았다.
끝내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게 얼마나 큰 사랑인지 몰랐다.
요즘은, 내가 카페라떼나 달콤한 것을 사 들고 불쑥 나타나면
아빠는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나온다.
유튜브를 보다가도, 당구 모임 가는 길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렇게까지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자주 잊고 산다.
어린 시절 나는 혀에 칼을 달고 다녔다.
아빠를 닮아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누가 시켜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아빠를 닮아서.
달리기를 못한다.
글을 쓴다.
음악을 켜놓지 않으면 하루가 허전하다.
신 것을 못 먹는다.
과일과 채소를 멀리한다.
아침엔 유령이다가 밤이 되어야 살아난다.
전부 아빠한테서 왔다.
닮지 못한 것도 있다.
손재주.
아빠는 못 만드는 게 없다.
나는 만들기에 영 젬병이다.
그 엄청난 똑똑함과 통찰력과 자신감도.
나는 아마 평생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겠지.
멋진 남자로.
거창한 추억은 없다.
같이 여행을 간 기억도,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장면도 딱히 없다.
그런데 나는 온통 아빠다.
추억은 없어도 몸에 새겨진 것들이 있다.
그게 더 오래간다는 걸, 요즘 들어 자꾸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 곁에서만
시간이 다른 속도로 간다.
유독 빠르게.
왜인지 알면서 오래 모른 척했다.
요즘 아빠는 하루 당구를 치면 이삼일을 쉰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다.
좁아지는 어깨.
작아지는 등.
아빠는 원래 걸음이 빨랐다.
성격이 급해서 늘 앞서 걸었다.
어느새 걸음이 느려졌다.
그 느리고 슬픈 뒷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속으로 무너졌다.
삼키는 횟수가 늘었다.
오빠와 아빠 생신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단체행동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한 발 물러서려던 참이었다.
오후 9시 23분, 메시지가 왔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것 같다."
화면을 한참 봤다.
대답하지 않고 싶었지만
대답해야만 하는 메시지였다.
그 순간 스피커에서 종현의 혜야가 흘렀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노래.
이미 없는 사람이 남긴 목소리.
갓길에 차를 세웠다.
손이 떨렸다.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울었다.
며칠 전, 아빠가 내 오른팔을 봤다.
이게 무슨 흉터냐고 물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빠가 흉터를 오래 들여다봤다.
침묵이 길었다.
기어코 기억해냈다.
아, 맞다. 팔 수술. 우리 쮸쮼이 많이 아팠잖아.
흉터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셨다.
혹시나 만지면 더 아플까 싶어서.
심장이 기어올라왔다.
아빠는 원래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대화도, 내가 흘린 말도, 지나쳤던 날의 날씨도.
당연한 줄 알았다.
요즘은 그것들이 조금씩 사라져 있다.
그걸 느낄 때마다 심장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다.
아빠는 나의 폐 수술을 기억하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였다.
나는 미술에 영 재능이 없었다.
방학숙제로 석고판에 초상화를 조각해야 했는데,
아빠가 대신 해주셨다.
너무 잘 만들었다.
학교 미술실에 걸렸다.
그 조각은 지금도 거기 있을지 모른다.
아빠 손으로 만든 것이, 내 이름으로.
거창한 추억은 없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있었다.
쮸쮼이라 불리던 순간.
엉망인 시험지보다 내 마음을 먼저 봐주던 일.
아빠 손으로 만든 것이 내 이름으로 걸려 있던 미술실의 벽.
그래도 나는 온통 아빠다.
혀도, 고집도, 글도, 음악도.
아빠한테서 온 것들로 나는 오래 살아왔다.
아빠가 나를 기억하는 동안,
나는 아빠 곁에 있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