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연인은 지금 병원에 있다.
수술이 필요하다. 선천성 질환이 있고, 시간이 갈수록 후천적 증상까지 겹치고 있다. 그런데 돈이 없다. 병원과 숫자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입원 기간만 늘어나고, 약으로 버티고 있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니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곳에 있는 거다. 모든 치료가 가능 한 그곳에서...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나는 지금 괜찮다.
직장이 있다. 벌이가 있다. 갑상선내분비내과, 호흡기내과, 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과를 고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가고, 영수증을 받고, 다음 예약을 잡는다. 이 루틴을 아직은 돌릴 수 있다.
오늘 병원을 다녀온 엄마 아빠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바로 와달라고 했다.
엄마의 손이 떨린다고 했다. 오른손만 그랬다. 어깨 수술 뒤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글씨를 쓰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엄마는 영어 성경을 매일 필사한다. 치매가 무서워서다. 가족력이 있다. 그러니까 손이 떨린다는 건, 엄마에게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말했다.
파킨슨병 관련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그 단어가 나온 순간, 엄마 아빠는 다리에 힘이 풀리셨다. 간호사 선생님의 다음 절차 안내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평생 가르치는 일을 하셨다. 아빠는 교수였고, 엄마는 교사였다. 무엇이든 명확하게 설명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던 사람들이었다. 차고 넘치는 사회 구성원이었고, 차고 넘치는 부모였다.
시간은 그들을 조금씩 뭉툭하게 만들었다. 걸음의 속도, 반응의 속도, 이해의 속도가 모두 느려졌다.
그리고 오늘, 그 두 사람은 간호사의 다음 안내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그들 대신 병원을 누볐다.
유독 병원에는 노인 환자들이 많다. 그들 곁에는 같은 노인이 있거나, 더 젊은 보호자가 있다. 대부분은 그렇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양관식이 나온다.
사랑하는 아내 애순이와 상급종합병원을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수납을 하고, 검사를 받고, 예약을 잡는다. 느려진 아내에게 불친절한 병원과 불친절한 사회가 못마땅했던 양관식은 결국 소리를 낸다.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그리고 자식을 향해 선언한다.
나의 사람을 지키라고.
애순이에게는 양관식이 있었다.
나에게도 있다. 같이 늙어갈 양관식이. 내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날, 그 사람도 걸음이 느려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병원 복도를 돌아다닐 것이다. 수납을 하고, 검사를 받고, 예약을 잡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양금명이가 없다.
나는 지금 여러 과를 뛰어다닌다. 체력이 있고, 벌이가 있고, 아직은 내 판단에 확신도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뭉툭하게 만든 그 시간이, 나와 나의 양관식에게도 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처럼 뛰지 못할 것이다. 빠르게 결정하지도 못할 것이다.
괜찮을 수도 있다. 의료기술은 빠르다. AI까지 가세했다. 내가 늙을 때의 병원은 지금과 다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더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될까.
아직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 엄마 검사 일정이나 잡으러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