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안 하는 쪽을 오래 택했다

by 서희

공중전화박스 앞이었다고 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가 박스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박수를 쳤다고.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나는 신나면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가던 아이였다고.



국민학교 2학년부터 고3까지, 반장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그때는 반장을 한다고 점수를 더 받던 시대가 아니었다. 생활기록부에 유리한 기록도 아니었다.

그런데 반장이라는 일이 있는 한,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손을 들었고, 앞에 나갔다.

반장은 대단한 자리가 아니었다.
교무실을 오가고, 시험지 봉투를 들고, 체육대회 줄을 세우고, 말해야 하는 순간에 대신 말하는 역할.

나른한 오후 수업이면 선생님이 말했다.
“반장, 노래나 하나 들을까?”

그러면 나는 무반주로 트로트 두어 곡을 바로 시작했다.
궁뎅이도 실룩거렸다.
교실이 잠깐 깨어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나는 걸어 다니는 주크박스였다.



대학에 가서는 더 분명했다.
흔치 않던 빨간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고, 화장을 예쁘게 하고서야 수업을 들으러 갔다.
기분이 좋은 날엔 나비가 수 놓인 그물스타킹도 신었다.

누가 보라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주저 없이 선택했다.
그게 내 쪽이었다.

비슷한 결의 친구들끼리 만나서 정말 진하게, 신나게 대학생활을 했다.
지하철 막차 직전까지 시간을 계산해 역 앞 포장마차에서 급하게 소주를 털어 넣고, 크게 웃고 크게 울었다.

졸업 후 직장에서 막내 라인일 때까지도 나는 반짝였다.
영업은 만나주기만 하면 자신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으면 공기를 읽고, 말을 만들 수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누가 툭 치면 무반주 노래 한 곡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늘 나오는 사람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먼저 했다.



시간이 흘렀다.
책임져야 할 일들이 늘면서, 관계는 점점 실용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만남은 안부가 아니라 거래에 가까워졌고, 말은 친절보다 효율을 탔다.

계산과 목적이 분명한 관계들 속에서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훅 들어왔다.
세게 맞았다.
나는 무너졌다.

나는 내가 가진 걸 그대로 꺼내는 쪽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계산기를 들고 있었다.
정면으로 나가던 사람은 옆에서 들어오는 주먹에 약했다.

몇 번의 타격 뒤에 나는 조용해졌다.

더 이상 신나고 방구나게 재미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더라.
나를 위해 꾸미지도 않았고, 남을 위해 기꺼이 기뻐하지도 않았다.
사람 만나는 일도 줄였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놀림감이 될까 봐
먼저 연락을 끊었고, 인연을 정리했다.

나는 안 하는 쪽을 택했다.
다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오래도록.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이 난다.

공중전화박스에서 노래하던 아이.
나른한 오후 교실을 깨우던 반장.
빨간 선글라스를 주저 없이 쓰던 대학생.
막차 직전까지 웃고 울던 사람.
영업 테이블에서 자신 있던 막내.

그 사람은 사라진 게 아니다.
잠시 멈춰 있었을 뿐이다.

반짝임은 성격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이제는 다시 작은 선택을 해보려고 한다.

내일은 나를 위해 한 번 꾸미고 밖에 나가본다.
끊어버린 인연 중 한 사람에게 짧게 안부를 보낸다.
분위기가 처지는 순간에 도망치지 않고 한 마디를 한다.

거창하지 않다.
다시 앞에 서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지우지 않겠다는 선택.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