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샤워시간과 경쟁한다.

지나간다.

by 서희

샤워기 물을 틀면, 경기가 시작된다.

발라드 한 곡이면 충분하다.
전주가 흐르면 머리를 적신다.
1절이 끝나기 전에 헹군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쯤이면, 가수도 노래를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십수 년을 그렇게 씻었다.

성격이 급하다.
폐쇄된 공간은 더 급해진다.
그 박스 안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샤워는 효율이다.

머리 → 얼굴 → 몸.
딱딱딱.
순서가 있다.
멍 때리기 금지.

어느 날, 발라드가 끝났는데도 헹굼이 남아 있었다.
괜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나는 패배자가 되었다.

그게 좀 웃겼다.
샤워시간조차 경기로 만들다니.

오늘은 사고가 났다.

머리를 감을 타이밍이었다.
손에는 체리색 바디샴푸가 올라와 있었다.
대기 중.

버릴까.
쓸까.

고민만 족히 1분.
내 기준에서는 긴 정지였다.

어쩔 수 없이 순서를 바꿨다.
허둥댔다.

노래는 몇 곡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늘 아침이면 딱 순서대로 재생되던 ‘샤워곡’은 이미 지나갔다.
다른 가수가 열창 중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패배자가 되었다.

물기를 닦는데,
좋아하는 노래가 흘렀다.

「지나간다」.

처절한 이별 노래가
내 사소한 패배감과 묘하게 맞았다.

3분을 넘긴 샤워도 지나갈 것이고,
시무룩한 기분도 지나갈 것이고,
오늘 하루를 사는 데 아무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노래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마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것이다.

내일은 일부러 시간을 끌어볼까 한다.
재생곡을 랜덤으로 두고,
내가 모르는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그 박스 안에 서 있어 볼 생각이다.

두 곡이 넘어가도, 세 곡이 흘러도
그게 내 패배는 아니라고
한 번쯤은 우겨볼 예정이다.

도망치지 않고.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