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타투샵에서는 절차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어색했다.
어떤 종이에 뭘 쓰는지,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팔을 어느 각도로 올려야 하는지. 그런데 겁이 나진 않았다.
타투를 많이 받은 친구에게서 소개받고 간 곳이었고, 그 소개라는 건 내게 꽤 강한 안전장치였다.
스마트폰 케이스 안쪽에는 작은 클립이 하나 있었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 오면 나는 그걸 찾아서, 기어이 상처를 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내니 오른손잡이인 내 왼팔은 더 이상 상처를 낼 곳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면을 이기고 겨우 잠에 든 내 옆에서 남편은 내가 깰까 봐 조심하며 흉터 크림을 발랐다. 나는 그가 들어오자마자 이미 깨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많이 슬펐다. 모르는 척 눈을 감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그때부터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고통을 견디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남편이 그 밤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래서 결론을 하나 세웠다. 통증을 밖으로 흘리지 말자. 대신 저장하자.
타투는 아프다. 나는 그 통증을 잉크와 함께 저장했다. 숨이 막혀올 때면 꺼내 보고,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하려고. 통했다.
내 몸에 타투가 몇 개 있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다. 그 숫자는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 다시 숨 쉬기 충분한 통증을 저장하고 있다. 적금처럼 든든하게.
가족들은 내가 타투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족 모임에서는 온몸을 꽁꽁 싸맨다. 계절을 역행하는 옷차림이 될 때도 있다. 나는 그게 부끄러워서라기보다, 굳이 설명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설명은 종종 내 이야기를 내 손에서 빼앗아 가니까.
그럼에도 나는 타투에게 고맙다. 세상이 보기엔 '문신'일지 몰라도, 내게는 장치였다. 숨이 막힐 때 다른 방향으로 새지 않게 붙잡아 두는 장치. 통증을 흩뿌리지 않고 한 곳에 보관하는 방식.
통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한 바늘 한 바늘 통증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필요할 때 적절하게 꺼내어 쓰고, 평소에는 잘 감추고 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