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범죄다큐를 켜는 이유

닫히지 않은 이야기는 틀지 않는다

by 서희

리모컨을 들고 화면을 고른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고,
빙하가 툭 떨어지는 영상들은 넘긴다.

우리가 매 순간 잃어버리고 있는,
이름도 몰랐던 야생동물에 관한 영상도 마음 아프지만
나는 넘길 수밖에 없다.

그걸 틀어두면, ‘심각하다’가 아니라 ‘끝났다’가 된다.
숨이 얕아지고, 손끝이 차가워지고,
나는 그날 하루를 접는다.


대신 나는 ‘이미 끝까지 가 버린 사건’을 튼다.
최악이 이미 발생했고,
이제 사람의 손이 개입해 추적하고 정리하는 이야기.

얼마 전엔 미국의 한 여성 연쇄살인범 다큐를 진지하게 봤다.
오래전에 끝난 사건이고, 범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들여다보려 했다.

범행의 순서, 피해자의 동선, 수사의 오류, 재판의 구조.
감정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갔다.
심지어 AI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왜 저랬을까”보다
“어떤 구조가 저 선택을 가능하게 했을까”를 묻는 식으로.


또 옛 연인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시리즈도 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이별이 안전이별이었다는 사실.
문을 닫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국내 시사 프로그램도 많이 본다.
앉은자리에서 편성표를 그릴 수 있을 만큼.
그런데 미결 사건은 여엉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 회차는 오래 남는다.
문이 닫히지 않은 방처럼.

그래서 수사물 드라마도 고른다.
아주 유명한 장수 시리즈는 여전히 내 최애다.
유사한 결의 작품은 거의 망설이지 않고 본다.
그들의 사건은 길어야 백 분 안에 정리된다.
누군가가 무너지고, 누군가가 붙잡히고,
마지막엔 결론이 찍힌다.


반대로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온갖 고초를 겪고
최종화에서야 희망이 조금 보이는 드라마는 못 본다.
그건 ‘행복’이 아니라 ‘지연된 호흡’처럼 느껴진다.
아마 중간쯤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포기할 것이다.


범죄다큐는 구조가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증언이 쌓이고, 수사가 이어지고,
어느 순간 이름이 특정된다.
체포. 재판. 판결.
가끔은 당사자가 앉아 자신을 설명한다.

납득이 되지 않아도, 화면은 닫힌다.


닫히는 문.
그게 필요했다.


불안이 내 정서의 디폴트값이 된 이후로,
나는 끝나는 이야기를 고른다.
끝이 있는 공포는 견딜 수 있다.
끝이 없는 걱정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세상을 다 감당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견딜 수 있는 단위로 줄여서 본다.
수습되는 과정만 남기고,
정리되지 않은 재난은 넘긴다.


그건 회피가 아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식이다.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나는 정리된 공포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