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마취 중 각성

by 서희

시작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이었다.


어느 날부터 감각이 조금 이상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무리를 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른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감각도 점점 둔해졌다.
젓가락질이 잘되지 않을 때쯤에는 더 이상 무리라고 넘기기 어려워졌다.


그때부터 병원에 가는 일이 무서워졌다.
혹시 정말 큰 병이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주변의 잔소리에 밀려 결국 병원에 갔다.
그다음부터는 병원 투어였다.
검사가 이어졌고, 결론은 단순했다.
너무 늦게 왔고, 더 늦기 전에 수술해야 한다는 것.
수술 일정은 급하게 잡혔다.


정신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눈을 떠 보니 수술 전 대기실이었다.
수술실 안은 예상대로 분주했다.
의료진은 익숙한 표정으로 움직였고, 나는 익숙한 환자처럼 누워 있었다.
수술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 수술 때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같았다.
“환자분, 약 들어갈게요.”
그다음은 늘 비어 있었다.
다시 눈을 뜨면 수술은 끝나 있었고, 몸에 연결된 것들은 대부분 정리된 뒤였다.
나는 거의 맨몸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이번에도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마취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곧 정신이 끊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잠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장 먼저 나를 깨운 것은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었다.
처음에는 수술이 끝난 줄 알았다.
수술 부위가 아픈가 보다 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 상황이 달랐다.
나는 회복실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료진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수술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아직 수술대 위에 있었다.


날이 선 것이 살을 가르며 들어오는 감각이 너무 또렷했다.
얼음 같은 송곳이 오른팔 깊숙이 박히는 듯했고, 그 고통은 한순간에 온몸으로 번졌다.
잠에서 덜 깬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놀라서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몸은 내 편이 아니었다.
겨우 입이 열렸을 때 나는 말했다.
“선생님. 마취가 덜 된 것 같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그제야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나도 알았다.
오른팔만 부분마취하고 수면마취로 끝날 줄 알았던 수술은, 그 자리에서 전신마취로 판이 커졌다.
나는 급하게 전신마취로 넘어갔다.


그 과정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목 안으로 굵고 단단한 것이 밀려 들어오는 감각.
사람은 아프면 생각보다 빨리 단순해진다.
그 순간의 나는 품위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이 장면이 빨리 끝나기만 바랐다.
수술은 잘 되었다.
문제는 끝난 뒤였다.
나는 마취에서 너무 일찍 깼다.
입에는 아직 관이 남아 있었다.
몸은 지쳤고, 목은 타들어 갔고, 눈물은 그냥 흘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입에 물린 것이 빠졌다.


나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의료진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봤다.
원래는 그 고통을 잊게 하는 약을 쓴다고 했다.
수술받는 사람에게 그 기억이 남지 않게 하려고.
나는 회복 중에 들었던 의료진의 농담을 그대로 말했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더 따지지는 않았다.


생길 수 있는 일이었고, 수술은 잘 끝났으니까.


다만 그날 이후로는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자기 몸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알고 싶지 않은 일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