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흉터보다 오래 남은 마음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기술보다 오래 기억된다

by 서희

어렸을 적 나는 언젠가 그네를 타다가 붕 하고 하늘을 날았다가,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에게는 날개가 없었으니까.


머리가 깨졌고, 경비아저씨는 나를 업고 가장 가까운 큰 병원으로 뛰었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드문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휴일 응급실에 실려 오는 상황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당직이었던 젊은 의사는 싫은 티 하나 없이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살폈다. 그 순간의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놀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는 뛰었고, 누군가는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오래 남아 있다.


그 봉합으로 나는 다음 날 바로 유치원에 갈 수 있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예후도 좋았다. 다만 흉터는 크게 남았다. 성형외과적인 봉합이라기보다 급한 응급봉합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훗날 나는 그 선생님이 연 병원을 직접 보게 되었다. 소아과였는지 내과였는지 기억은 흐리다. 다만 병원 이름에 파랑새가 들어갔다는 것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어찌 되었건 외과적 시술이나 봉합과 친한 진료과를 전공하신 분은 아니었다.

나는 그 흉터를 오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릴 적의 나는 제법 왈가닥이었고, 얼굴에 남은 크고 작은 자국 몇 개쯤은 그 시절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편리했다. 누가 흉터를 물으면, 아 내가 그네를 타다가 한 번 크게 날아갔지, 하고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 그만이었다. 아픈 기억도 오래 말하다 보면 나중에는 무용담처럼 정리되곤 하니까.


그런데 그 선생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응급처치 후 진료와 상처 치료를 위해 다시 그 병원을 찾았을 때, 그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사과를 하셨다고 한다. 너무 서툴게 봉합해서 흉터가 많이 남을 것 같다고. 사람을 살려주신 분께서 사과를 하시다니, 우리 가족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아이가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유치원에 갈 정도로 잘 치료해 주셨는데, 무엇이 그토록 미안하셨을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살렸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면책하지 않는다. 다급한 상황이었다는 말로 자기 몫을 덮어두지 않는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었을지 오래 마음에 둔다. 나는 그 당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살려놓고도 흉터 하나를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마음. 다행이라는 말 뒤에 끝내 미안함을 남겨두는 성정. 내게 남은 것은 상처의 자국만이 아니라 그런 마음의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선생님이 내가 살던 동네에 병원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 바로 맞은편이었다. 세상은 가끔 너무 늦게 정확해진다. 어린 날 나를 살려준 사람이 아주 평범한 생활 반경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있었다. 이제는 인사를 드릴 수도 있겠다고, 감사하다고 한 번쯤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한 거리였다. 파랑새라는 이름이 붙은 병원은 어쩐지 그분과 잘 어울리는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은 병원을 개원하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설레는 가족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셨다.

비행기 사고였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래전 응급실보다 더 조용한 방식으로 놀랐다.

어린 날의 내 시간을 이어준 사람이, 정작 자기 삶의 다음 장면으로는 건너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얼굴에는 그날의 흉터가 남아 있었고, 그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그제야 그 흉터가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린 날의 사고를 설명하는 표식이었다면, 그 뒤로는 어떤 사람의 성실함과 미안함까지 함께 품은 흔적이 되었다.


완벽하지 않았던 봉합은 남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치료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책임감이 커서, 다 끝난 뒤에도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한 사람의 흔적에 가까웠다. 급한 손놀림으로 아이를 살려놓고도, 흉터 하나를 오래 마음에 걸려 하던 사람. 내게는 그 사실이 오래 남았다.


나는 그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제대로 전한 적이 없다.


그 대신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살려놓고도 미안해하던 의사가 있었다는 것을. 흉터를 남겼다고 사과했지만, 사실은 한 아이의 시간을 오래 이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응급처치로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나는 내 얼굴의 흉터보다, 그분이 끝내 놓지 못한 마음을 더 오래 기억하겠다.


나는 오늘은 내 얼굴의 자국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는 쪽에 서겠다.

작가의 이전글[다시 신입] 나는 AI에게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