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슬픔의 씨앗을 심는다

by 서희

좋은 헤드폰이 있다. 쓰면 물속에 잠긴다. 고요한데 심장이 울린다.

나는 그걸 쓰고 혜야를 튼다.

살고 싶지 않아, 어찌하나.

흘려듣지 않는다. 찾아서 듣는다. 슬픔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찾을 때까지 반복한다. 찾으면 심장에 묻는다. 싹이 트길 기다린다.

혜야가 끝나면 다음 노래로 넘어간다. 요절한 가수들의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사연이 있는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그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소리를 냈는지. 나는 그걸 굳이 찾아내서 심장에 가져다 놓는다.

River Kinn의 Cut을 튼다. 통증으로만 살아있음을 증명하던 날들이 돌아온다. 손목이 아니라 기억이 아프다.

Billie Eilish의 Listen Before I Go. 약을 모아두던 날이 있었다. 마지막인 줄 알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꽤 차분한 얼굴이었다.

김성재의 말하자면. 스톰 옷을 입고 싶던 중학생이 나타난다. 그 애는 그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나도 몰랐다.

중국 영화를 틀면 장국영이 나온다. 항상.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마이클 잭슨. 사연을 가득 품고 떠난 천재들의 노래는 손짓 같다. 그들의 세상으로 오라는.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2019년 5월, 나는 어떤 사람을 잃었다. 오해가 있었다. 나는 그 오해를 풀지 못했다. 영원히 풀 수 없게 됐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알고 있었다.

알부민을 때려 부어도 간세포가 터져나갔다. 투석을 해도 부종이 해결되지 않았다. 가장 강한 승압제를 들이부어야 겨우 유지되던 혈압.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호흡. 심장 가까이로 계속 옮기던 에크모. 심장판막에 자리 잡고 증식하던 포도상구균.

모든 지표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의 가족들에게. 도저히.

5일이었다. 지옥 같은 5일.

그 사람은 갔다. 오해는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람과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 파일을 잃어버렸다. 내 부주의였다. 그것으로 그 사람과 연결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슬픔의 씨앗을 심는다. 얼마나 더 미안해져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니까 계속 심는다.

이미 먼저 간 사람을 향한 노래들도 나를 던져 넣는다. Dean Lewis의 How Do I Say Goodbye. 나에게 모든 이별은 2019년의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오자키 유타카의 라이브 무대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는 무대 위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한다. 죽은 사람이 살려달라고 한다.

김광석의 목소리는 다르다. 무심하게 당긴다. 오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당긴다. 나는 그게 더 무섭다.

유재하는 다르다. 조용히, 거기서 행복하게 지내라고 하는 것 같다. 축복처럼 들린다. 그래서 슬프다.

김현식은 또 다르다. 온몸을 긁어대며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러준다. 이렇게 처절하게 살고 싶던 하루이니, 제발 살라고. 그는 먼저 간 사람인데, 나한테 살라고 한다.

나는 많은 죽음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죽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붙들거나, 보내거나, 당긴다.

나는 헤드폰을 쓴다. 물속에 잠긴다. 심장이 울린다.

아직 여기 있다.

나는 아직도 2019년에 살고 있다. 그의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버틴다. 눈물이 기를 쓰고 흐르려 하면, 죽어도 울지 않겠다고 맞선다. 그렇게 나 자신과 아웅다웅 싸우고, 나 자신을 미워하면서. 2019년부터 2026년이지만, 오늘도 2019년이다.

하지만 나는, 심지어 바다에도 바닥이 있으니, 언젠가는 이 심연의 바닥에 닿아 박차고 올라올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