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침마다 전화를 한다. 몇 시에 출근할 거냐고.
몇 년 공을 들이던 조카 육아가 끝났다. 실업자가 됐다고 놀렸더니 육아 대상을 바꿨다. 이제 나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실한 사람이다. 성실하게, 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산다. 우연이었다. 교류는 많지도 않고, 또 어떻게 보면 사사롭게 잦기도 하다.
차를 몰고 엄마 동 앞에 정차하면 엄마가 종이가방을 건넨다. 가방 안에는 야채주스, 삶은 고구마, 히카마, 야콘, 과일. 종목은 바뀐다. 한 끼로 배부를 만큼의 전투식량이 담겨 있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일단, 고구마는 절대 굽지 않는다. 당 올라간다고.
오늘은 삶은 계란이었다.
삶은 계란은 구운 계란보다 까기가 번잡스럽다. 탁 쳐서 도르르 굴린 다음 껍질을 떼어내는데, 흰 살이 자꾸 붙어 나왔다. 손이 번거로워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생각났다. 오십이 다 된 딸 먹이겠다고 계란을 삶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엄마.
흰 살점을 그냥 떼 버릴 수가 없었다.
외과의사처럼 신중하게 껍질을 벗겼다. 노안이 온 눈을 희번덕이며. 거의 온전하게.
나는 음식을 조금씩 베어 먹는 쪽이 아니다. 한입에 가득 차게 먹는다.
삶은 계란을 한입에 다 넣었다.
나는 외과의사가 아니잖아.
바스락바스락. 덜 떼어진 껍질이 씹혔다.
그래도 그 편이 마음이 나았다. 엄마의 수고를 한 조각도 뱉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내일도 껍질째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