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대학 동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대인기피가 심하다. 몇 년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선을 다해 피해왔다. 경사는 계좌이체로 대신했고, 조사에는 몰래 다녀왔다. 그러나 불어난 몸집 때문인지 뚜렷한 인상 때문인지, 나는 십중팔구 지인들의 테이블에 초대되었다. 나는 밑반찬으로 나오는 멸치볶음의 멸치들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동자들은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기 모임이 잡혔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호스트가 되었고, 밝았던 이십대의 내가 초대되었다. 이렇게 망가진 사십대의 내가 아니라.
전화가 왔다. 동기였다. 자기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빨리 나와서 같이 놀자고 했다. 이유도 없고 선약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래, 얼른 나갈게,라고 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우울증이 심하면 씻기도 힘들다. 그런데 그날은 서둘러 씻었다. 시계를 봤다. 늦지 않으려고 했다. 대중교통을 타면 내가 먼저 도착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했다. 공황과 대인기피로 대중교통은 생각도 못 하는 내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조여오는데. 결국 차를 타고 갔지만.
어제 만났던 것처럼 그 애를 만났다. 그동안 끊어졌던 내 근황들을 업데이트해 줬다. 그 애도 마찬가지로 업데이트 버튼을 눌러줬다.
그 애가 말했다. 야 공황? 너 연예인이야? 그거 연예인병이잖아?
웃었다. 너무 좋았다.
놀리는 방식은 굉장히 일차원적이었다. 야 너 하루에 천만 원 번다며. 야 너는 완전 꿀보직이네 니가 사장이네. 말도 안 되는 걸 사실처럼 끌어와서 던졌다. 받아치지도 않았다. 아오, 저걸 그냥 확, 하면서 또 먹고 마시고 웃었다.
광대뼈가 아프도록 웃었다. 예전처럼.
1차 자리가 아쉽게 끝났지만 아무도 슬프지 않았다. 이미 만나기로 결정한 날에 2차 모임 장소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열외 없이 그 장소로 갔다. 너무나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우리의 찬란했던 이십 대를 보냈던 동네. 건물들은 바뀌었어도 골목길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사십대 중후반이다. 원장, 교수, 팀장.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사는 나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십대의 우리가 약속 없이도 모여서 먹고 마시고 뛰어다니며 놀던 그때가 되어 있었다. 그 식당은 운 좋게도 승승장구해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법의 문을 통과한 것처럼 돌아가 있었다. 밝고, 직설적이고, 잘 웃던, 우울증이라고는 모르던 나로.
3차는 따라가지 못했다. 멘탈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을 안았다. 아무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랜 친구가 별로 없다. 오래된 모임에서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 새로 사귄 모임에서는 쫓겨났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이 모임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친구 덕분이었다. 매일 연락을 해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고, 꾸준히 알려줬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그날 나는 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날 밤, 그 친구가 집에 가는 길을 같이 걸어줬다. 늦은 밤 혼자 운전하지 않게.
걸으면서 말했다. 너무 거기 깊이 빠져있지 말아라. 사람은 각자 생각대로 사는 거고, 너는 네 생각대로 살아라. 그때의 너는 최선을 다했고, 그거면 됐다. 너도 네 편할 대로 생각해라.
그냥 고마웠다.
그래, 나 편할 대로 하고 살자. 그래도 된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런 생각이 오래가지 않아서 문제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찾아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