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선배를 죽여두었다

by 서희

사진이 한 장 왔다.

호주였다. 수염이 길었다. 머리는 장발로 헝클어져 있었다. 선배가 누군가에게 보낸 이메일이었고, 나는 그걸 보았고, 그걸로 끝이었다. 딱히 작별 인사도 없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분명히 가깝다고 생각했던 두 학번 위의 선배였다.

그 이후로 소식이 없었다.

간혹 그 선배 생각이 나면 모래알이 입안에 가득한 것 같았다. 까끌거리고, 슬펐다. 흐릿하게. 선명한 비극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부터 이름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조심스러운 이름이 하나 생겼다, 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를 떠나보냈다. 명복을 빌며. 딱히 장례는 없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오랜 사람들이 모였다. 치킨이 나왔고, 맥주가 돌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꺼냈다.

"근데 그 오빠는 어떻게 된 거야. 호주 간 다음에 연락이 끊겼잖아."

테이블이 잠깐 멈췄다.

무슨 소리야. 그 선배 멀쩡히 졸업했잖아. 처자식도 있어. 지금 내일 대회 있어서 한강 뛰고 있을걸?

그 선배 내 친구랑 결혼했어!!

나는 치킨을 씹던 채로 멈췄다.

그가 나타났다.

내가 자기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했다. 머리는 짧았다. 수염도 없었다. 멀쩡히 살아서 웃고 있었다.

이십 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기억 속 그는 여전히 호주 어딘가에서 장발로 헝클어진 채 멈춰 있었는데, 그는 내가 그를 죽였던 그 시간을 1분에 60초씩 착착 살아왔다. 무병장수를 위한 러닝은 그를 누가 보아도 잘 관리한 40대 후반으로 만들어줬다.

선배가 치킨을 4마리 쏘고 갔다.

우리는 셀카를 찍었다. 아주 다정하게.

나는 이십 년간 혼자 조용히 한 사람을 죽여두고 살았다. 확인도 없이. 통보도 없이. 이메일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은 가끔 멋대로 장부를 닫는다. 상대가 살아있든 말든.

다음번엔 닫기 전에 한 번은 두드려보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