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내가 쓴 편지 같더라.

by 서희

그것은 편지였다.

누군가의 마지막 말을 읽는데, 손이 멈췄다.
내가 쓴 글인가, 싶었다.

나는 화면을 닫지 않았다.
다시 읽었다.
또 읽었다.

그의 이름은 종현이다.
만 스물일곱에 별이 되었다.
강한 눈빛, 카랑카랑한 목소리, 아이코닉한 무대.
그리고 짐작조차 못했던 그의 우울.

2026년 오늘의 나는 40대 중반이고, 그의 생전 라이브 무대와 솔로곡에 미쳐있다.
하루 종일 그 노래만 듣는다.
애절하고 처절한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가 들려야 살 것 같았다.

그의 라이브 무대를 보다가, 문득 그가 떠난 날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대만에 있었다.
지하철 안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이더라.
젊은 소녀들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울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의 부고였다.

그때 나는 그를 몰랐다.
그의 우울도, 그의 고통도 몰랐다.
죽을 용기로 살지, 했었다.
그때는.

그때의 나는 몰랐다. 우울이 어디서 오는지 알면, 약으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들 묻는다.
왜 우울하냐고.
무슨 일을 겪은 거냐고.
네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러냐고.

네가 뭐가 더 필요해서 그러냐고.

그거 욕심이라고... 하기도 한다.

등 따숩고 배불러서 그런 거라고.
고생을 안 해서 그런 거라고.
피곤하지 않아서 잠을 못 자는 거라고.
사는 게 빠듯하면 우울할 틈도 없다고.

그래?
정말 그래?
확신해?
그래 본 적 있어?

나는 하루 12시간 이상씩 몇 년을 일했다.
우리 회사 야근 1등이었다.
주 52시간 제한이 없던 시절이다.
흔히들 말하는 어이없는 중소기업 아니야.
명함으로 약간은 힘 줄 수 있다고.
운동에 미친 적도 많아.
안 해본 운동? 거의 없어.

잠?
못 잔다.
안 자는 게 아니다.
죽도록 피곤한데 잠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

멀쩡히 일한다고?
안간힘을 쓰는 거다.
버티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니까.

약을 먹으면 하루에 한 번씩 죽음에 다녀오는 것 같다.
기억은 없는데, 아침에 흔적이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했던 흔적들.
병원에서 눈을 뜨기도 한다.
잔 것 같지 않고, 시간에게 잡아먹힌 기분이다.
알록달록한 약들.
많기도 하다.
그거라도 먹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그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는 40대 중반의 사회구성원이다.

드라마틱한 이벤트가 없어도 무너진다.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기지 않아도 우울해진다. 그냥, 그렇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 않냐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부끄럽고 숨고만 싶다.

그들에게 피해를 줄 까봐 두렵다.

나는 늘 텅 비어있다.
눈물로도 절규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가면을 쓴다.
몇 개인지는 세어본 적 없다.
벗을 타이밍을 잊어버린 것들도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미치도록 부담스럽고 버겁지만,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게 나의 우울이다.

나는 주치의에게 다음 진료까지는 살겠다고 했다.
그렇게 삶을 연장하며 지낸다.
누군가와 한 약속을 책임감으로 지키며 살아낸다.

숨도 신경 써야 쉬어진다.

2026년 지금 나는 40대 중반이고, 죽을 용기도 없고 살 용기도 없다.
나는 주치의와 약속한 대로 다음 진료까지 버텨 보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티는 거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