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복 펌프퓨리를 꽤 좋아했다.
스파이더맨 버전이 있었고, 울버린 버전이 있었고, 판다 배색처럼 생긴 버전도 있었다. 가벼웠다. 편했다. 성황리에 방영되던 드라마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모델이었다. 그 운동화는 발을 특별한 방식으로 잡아주었다. 날렵하게, 딱 맞게. 그래서 신으면 어딘가 좋은 곳으로 데려가줄 것 같았다.
남편이 커플로 신겠다고 265mm 보라색 펌프를 샀다. 남편의 발은 통통하고 평평하다. 그 운동화가 원하는 발이 아니었다. 신지 못했다. 그렇게 그의 몫의 운동화가 남아버렸다.
그렇게 보라색 운동화는 현관에 남았다. 먼지가 쌓였다. 고양이에게 공격당했다. 신발장 귀퉁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관으로 나왔다가를 반복했다. 아무도 신지 않는 운동화는 점점 슬퍼 보였다.
오늘 아침, 어쩐지 그 운동화를 꺼냈다.
가슴에 안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신데렐라를 찾아다니는 왕자님처럼, 나는 운동화를 들고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설명이 길어졌다. 오래되긴 했는데 못 신었으니 어찌 보면 새 거라고 할 수 있다, 기분 나쁘지 않으면 한 번 신어봐라, 막 신을 운동화 하나쯤은 필요할 수 있지 않냐고. 귀하게 구입한 물건을 선뜻 내어주는 입장이었는데, 희한하게 미안함이 같이 올라왔다.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 직위는 뭘 하든 직원들을 예스맨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자리니까. 한 명씩 신어봤다. 한 명씩 고개를 저었다. 발볼이 좁다, 발등이 안 들어간다, 불편하다. 다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출근한 직원에게 내밀었다. 나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우리 사무실 막내였다.
신었다.
맞았다.
편하다고 했다. 마침 운동할 때 신을 운동화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고 했다. 그 표정이 상사가 주는 것이라 거절하지 못한 표정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난 주었고, 그는 받았고, 이제 그 운동화는 그의 것이다.
보라색 운동화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제 몫의 발을 찾았을 때 비로소 빛난다.
나는 오늘도 내 몫을 살아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