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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Sep 04. 2023

관계의 속도

가끔 동네 바에서 혼술을 한다.

망원동에 있는 핫하고 건전한 바에서.


혼자 바에 들어가는 길은 약간 어색하다.

어색하고 옅은 웃음을 띄우고 문으로 들어서면... 약간 덜 어색하게 "오셨어요" 작은 목소리로 맞아주신다.


인테리어도 좋고, 또래 바텐터 주인장님이 수더분하고 편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칵테일을 정성스럽게 제조해 주신다는 점이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실험하는 공대생 같다.  


어떤 음식이든 정성보다 중요한 레시피는 없다.

칵테일에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는 걸 알게 해 준 분이다. 다음날에도 굉장히 말짱하다.


얼마 전 대학원 모임에서 가끔 혼술을 한다고 했더니만... 혹시 호바는 아니지라는 농담을 들었다. (에휴 촌스러워! )


커피를 웬 종일 마시며 정신을 곧추 세우고 있는 나에게 카페보다 조금 더 느슨해질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책 보는 바, 음악이 좋은 바 - 수집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앞에 서계신 분께 말은 잘 걸지 않는다.

그래도 단골이 되어가며 드문드문 대화를 하고 있다.


슬픔이 가득한 날엔 말문이 막힌다. 이야기가 고파서 가게 되지는 않는 듯.

두 잔의 칵테일이 최대치였는데, 어제는 증류 베이스 칵테일 3잔을 마셨다.


2잔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주인장과 아르바이트생이 봤으려나... 그땐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마 다시 찾는 날에도 조금 쑥스럽게 문을 열 것이다. 서로 안 본 척..., 못 본 척해주실 거다.

 

동네에 혼자 가는 카페, 바, 음식점을 숨겨두었다.

대부분 주인장들은 나를 알아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는 척을 해준다.


먼저 내가 주로 주문하는 메뉴를 말해주거나, 들어올 때부터 눈 인사를 해주거나, 예전에 나눴던 대화를 상기시켜 주거나, 서비스를 준다. 혼자 가도 안전한 느낌이 든다.

가까운 지인들을 한 번씩 데려간다. 그땐 또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다.  


지치고 힘들 때, 지치고 싶지 않고 힘을 얻고 싶을 때,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서 느슨해지고 싶을 때

늘 그 자리에서 맞아주는 단골집들... 내가 망원동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난 그들과 조금씩 천천히 관계를 맺어왔다.

그렇지만 늘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모양으로 그곳에 간다.

가끔씩 놀랜다. "오늘은 많이 피로하셨나 봐요"라는 주인장들의 인사 속에서 나를 본다.


아지트... 마음의 커튼을 달고 싶거나 재치고 싶은 날...

나는 적당한 거리 안에 있는 타인과 미적지근하게 소통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우리 더 가까워지지는 마요. "


*** 보통 다음 날은 걷고 운동하고 굶어서 마음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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