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행을 만들며 산다. 누가 불행을 원할까마는 결국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만든 것일 뿐이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한 헬렌 켈러가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이 멀쩡한 우리는 돈을 벌지 못해서 불행하고, 약간의 손해를 보아 불행하고,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행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불행하다.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참지 못하고, 그리하여 세상을 원망한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는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일과 채소, 그리고 여러 곡물이 섞인 밥을 먹고 하루에 30분씩 운동을 하고 한 시간씩 햇빛을 쪼일 수 있다면 행복하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 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 이 질문에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은 씨앗 같은 것이라 주위에 뿌리면 수많은 결실과 함께 되돌아온다. 더 많은 씨앗을 얻게 된다.
바람이 조금 있는 아름다운 날에는 밝은 햇빛 속을 반바지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산책하고, 우울한 날에는 집 안에서 그 기분에 어울리는 좋은 책 한 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은 이미 행복하다. 이때 돈이란 밥 먹고 난 후 아이스크림 한 개, 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실만 큼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인생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 아닐까?
아,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의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풀루타르크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그저 벅차다. 고등학교 시절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연주가 그랬고, 허름한 동아리 방에서 촛불을 켜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선배의 손이 그랬다. 환경이라는 분야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가치관과 의견들을 쏟아낼 때 아름답다 느꼈고, 종교 서적의 문장을 일상으로 끌어당겨와 읇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랬다. 밤에 보는 한강이 그렇다. 어느 지점에서도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같은 지점에서도 아름다움이 갱신된다. 구본형 선생님의 글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너무나 빠르게 세상을 떠난 천재. 그는 스스로를 변화경영 전문가라 명명했지만, 나는 그를 시인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