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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Jul 16. 2024

책임감 없는 책임

너는 나를 줄곧 괴롭혀 왔다. 부채를 못 견디는 성격으로 태어난 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간에 나의 책임의 무게를 측정해서 짊어지기 바빴다. 사람들은 이런 내게 효녀라고 했고, 일중독이 있다고도 했고, 착하다고 했다. 공동체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했었다.


인생에서는 누리고 가꿔야 할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사랑, 편안함, 행복감 같은 것들. 그중에 하나가 책임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의 그릇은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 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흘러내리는 못생긴 그릇을 마주했다.


'이게 나여야 하나' 책임감을 느끼고, 책임을 지고, 그 책임을 졌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느끼는 사랑, 편안함, 행복감.. 이 순서가 맞을까.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그릇을 넓혀 나가는 게 진짜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지도 못한 채 책임감이 질질 흘러내시는 못생긴 그릇을 탓하며 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애쓰고 애쓰다 잠깐 숨을 쉬었는데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보였다. 나의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교묘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데 끌어다 놓는 사람이었다. 옆도 보고 앞도 다시 보았다.


나의 책임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책임감이었을까. 책임을 지는 것과 책임감을 느끼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불필요한 책임감을 걷어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족, 일, 공동체에서의 나를 생각하며 책임이 아니라 책임에 대한 중압감을 정리했다. 웃고 싶었다. 즐거울 수 있었다. 돌아봐야 했다.


그렇다면 나의 그릇은? 작아지지 않았다. 예쁘게 변할 것이다. 지저분하게 넘치던 책임의 감정들이 사라지고 그릇의 7할만이 차있다. 찰랑찰랑... 고요하고 여유롭게 책임을 지는 사람.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 책임감보다는 책임.




책임 : 責任 / Responsibility 자신이 행사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부담하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다.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책임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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