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닭띠다.
나는 쌈닭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10대, 20대, 30대 크게 한 번씩 싸웠던 기억이 또렸다.
10대와 20대에는 이성 때문에 동성과 싸웠고, 30대에는 가치관 때문에 이성들과 싸웠다.
10대와 20대엔 걸어오는 싸움을 기꺼이 응낙하고 말로 싸웠다. 내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해나 질투로 엮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싸움의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니들이 모르면 어쩔 수 없지. 난 결백해'
'그깟 남자가 뭐라고... 난 관심 없다고!'
그렇지만 걸어오는 싸움에는 대담히 맞섰다. 설득은 없었다. 싸움을 걸어오는 건 상대였으니까. 싸운 상대들과는 자연스럽게 결연하게 되었다. 다들 잘 살겠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싸울 일도 아니었고, 내가 그 친구 좋아하니까 너 좋아하는 거 아니면 그 남자애 좀 멀리해줄래? 이런 당부 하나면 끝날 일이었던 것 같다. 그네들이 거론하는 남자들을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이건 진짜다.
30대에 내 인생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끈질기고 격렬한 싸움? 에 입문했다.
오래 알고 지낸 한 남자로부터 자주 삐쳤고, 또 상처를 받았고, 토라졌다. 사사건건 생각이 맞지 않고 격한 감정이 자주 있어서였을까? 그는 날 쌈닭이라고 했다. 이젠 가끔 보는 사이지만. 당시 가졌던 오만가지 감정들이 사라진 지금 객관적으로 생각해봤다. 후회가 남는 지점이 있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랄까. 온갖 협상과 협박이 난무 했을 뿐. 그래서 우린 결국 헤어지게 된게 아닐까.
직장에서는 한 상사와 계속 부딪혔다. 나이도 연차도 차이가 많이 났었던 분이었는데, 오해가 커졌다. 상사와 선을 넘는 말들이 오가기도 했고, 타협의 과정도 있었다. 처음엔 그분이 나쁘다 생각했는데 결국 이 관계의 본질은 사람에 있지 않았다. 관계를 결정짓는 건 사람 사이의 감정에만 있지 않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자리 잡아갈 때 이념과 가치관의 갈등도 충분히 갈등 요인이 된다. 그러나 감정으로 물들어 있던 그 시절 한가운데 참으로 어설펐다. 싸움판이 벌어졌으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갓 서른 된 사회적 약자가 있었을 뿐. 결국 난 퇴사했다.
40대가 된 지금, 나는 전사로 거듭나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잘 싸워야 내 모습을 지킬 수 있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쟁터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나 그 싸움의 방향이 상대를, 사회를, 시스템을 이기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쌈닭의 혈기를 내안으로 옮겨 본다.
함께 가기 위해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나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치열하게 어제의 나와 과거의 나와 투쟁한다.
나는 진짜 쌈닭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