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의 시대, 생존을 위한 사치를 해야하는 이유

비효율적인 개인의 경험을 찾아서

by 박예찬


최근 한 논문에서 흥미롭고도 무서운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나를 학습한 챗봇이 상대방의 챗봇과 미리 대화를 나누고, 데이터상으로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골라주는 기술입니다.


논문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 출처 - 코넬리 대학 홈페이지

논문의 제목부터 “Love first, Know later”라고 할 정도로 소개팅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감정의 낭비를 막아주는 극강의 '효율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죠.


사용자의 성격을 학습한 AI 페르소나를 대신 활용하는 기술로, 두 에이전트가 대화를 나누면 'Love Observer'가 등장해서 두 사람을 평가해 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대화의 흐름, 상호 참여도, 가치관 일치 등을 분석해 궁합을 점수화해주고, 일상적 대화보다 '결정적인 순간(Critical Moments)'의 반응에 높은 비중을 두어 서로가 잘 통하는지 확인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끼리 사전 소개팅을 하는 세상이 다가왔습니다. / 출처 - AI 이미지 생성


기술은 이제 우리가 직접 겪어야 할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들을 하나둘씩 지워나가고 있습니다.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세상에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모든 시도는 '쓸모없는 경험'으로 치부되어 기술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대화, 어색한 공기, 예상을 벗어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삭제한 만남이 과연 진정한 만남일까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정제된 데이터가 아니라, 오감을 통해 체득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화면 속의 픽셀을 보고 스피커의 진동을 듣는 것을 넘어, 직접 만나 눈을 맞추고 상대의 온기를 느끼며 나누는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우리에게 '답'을 빠르게 내려주지만, 비효율적인 경험은 우리에게 '감각'과 ‘경험’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말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 출처 - 국민일보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후 소감에서 말해 유명해진 이 말은 경험의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눈물이 고이고, 누군가는 옛 기억을 떠올립니다.

기술은 풍경을 4K 화질로 복제할 수는 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며 개인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의 결까지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나만의 감정, 나만의 느낀 점, 나만의 서투른 시도들.

이런 '비효율적인' 과정들이 쌓여 한 사람의 고유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개인의 경험입니다.

기술은 ‘고속도로’처럼 우리를 답으로 이끌어 주지만, 경험은 ‘오솔길’처럼 나만의 이야기로 새로워지게 합니다. / 출처 - AI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길로만 걷는다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겠지만, 결코 나만의 이야기를 가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율적인 챗봇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직접 부딪히는 용기입니다.

효율적이지 않은 경험을 하면서 나만의 경험과 이야기를 찾는 ‘생존을 위한 사치’를 해야 할 때입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편리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보길 권합니다. 땀을 흘리고, 당황하고, 때로는 실망하더라도 직접 몸을 움직여 얻어내는 경험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창의성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적이지 않은 경험, 그것이 당신을 당신답게 만듭니다. 지금 그 쓸모없는 경험, 생존을 위한 사치를 새해부터 시작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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