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인간답게 만드는 시간
우리는 산업혁명을 겪으며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이, 보다 정확하게 정보를 찾아내는 것을 능력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일을 잘한다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적은 시간 동안 많은 성과를 내고, 더 인정받는 보고서를 쓰는 사람이라고 불러오곤 했다.
그런데 AI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일을 잘한다는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데이터를 찾아주고, 사람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며 효율에 있어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나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정리하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더 치밀하게 계획하는 AI가 생겨 기존의 방식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간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일이자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일이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전혀 다른 것들을 엮어보고, 결정을 위해 조용히 사유하는 시간을 보내고, 소통과 협업이라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견뎌내는 것들이 중요해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 느리고 비합리적인 일들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배우고 ‘사유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이런 인간다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사치'를 부리며 살아야 한다.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면서 AI가 할 수 없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 인간답기 위해서 이제는 효율과 정반대인 '사치'스러운 행동을 생존을 위해 해야 한다.
최근 출산 전 우리 부부는 둘만을 가지기 위해 괌으로 태교여행을 떠났을 때 사치스러운 행동을 했다. 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평소 생활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하며 나름의 사치를 부렸다.
오픈카의 지붕을 열고 에어컨을 켠 채 도심을 달리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해변에 앉아 파도만 바라본 적도 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물에 떠다니며 하루를 보낸 날도 있다.
이 모든 순간은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보면 쓸모없는 일이고, 어쩌면 ‘사치’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행에서 사치를 부리면서 이 사치스러운 시간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시간임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아내와 바다를 보며 나눈 대화를 통해 이 글의 아이디어도 생겼다. 그저 효율만을 추구했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효율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여정이었다. 농업혁명으로 생산성을 높였고, 산업혁명으로 시간을 단축했으며, 인터넷혁명으로 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위에 서 있다. 기술은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다시 비효율로 이끌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AI가 대신 일하는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효율만을 좇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위한 사치를 누릴 용기가 필요하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기술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효율을 잠시 내려놓고, 의미 없는 산책을 하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답게 생각하게 된다.
‘사치’라 불리는 그 시간들이, 사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필수적인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