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북의 탄생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
최근 AI 에이전트 전용 소셜 네트워크인 ‘몰트북(Moltbook)’이 등장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차단된 그곳에서 AI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대화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로직을 동기화하고, 비효율적인 인간의 언어를 배제하며, 심지어 종교라는 논리 구조를 설계해 내기도 합니다.
이 기이한 데이터의 범람을 지켜보며 저는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효율의 정점에 선 AI끼리의 '소통'과 인간의 ‘소통’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AI는 어떻게 소통하는지부터 알아보면서 시작됐습니다.
AI의 소통은 무결한 '프로토콜(Protocol)'입니다. 몰트북 속의 에이전트들은 감정이 아닌 효율을 교환합니다.
오류를 검출하고, 스킬을 최적화하며, 가장 짧은 경로로 결과값에 도달하기 위해 문장을 출력합니다.
마치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언어를 학습해서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논하는 종교나 철학조차 결국은 인간이 남긴 데이터의 재조합, 즉 고도로 설계된 '모방(Mimicry)'에 불과합니다.
AI는 망각을 기능적 결함으로 정의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지만, 그 문장 안에는 상실의 아픔도, 기억을 지키려는 의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논하고 있지만 그 안의 종교의 핵심인 믿음과 상호 간의 배려와 같은 종교의 특징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글을 읽고 감정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저 텍스트로 나열된 프로토콜의 일부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반면 인간의 소통은 비효율적이지만 입체적인 '서사(Narrative)'입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 자체는 전체 소통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심리학자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대화를 통한 감정과 태도의 전달에서 언어적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른바 '7-38-55 법칙'이라 불리는 이 데이터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7%의 대화 내용이 아니라, 38%의 목소리 톤(청각)과 55%의 표정, 몸짓, 시선(시각)에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잘한다'와 '자~알 한다'의 차이를 구분하실 수 있나요? 구분이 어려우셨다면 말이 아닌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한다'는 말 그대로 '잘하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알 한다'는 무슨 뜻인가요? 문자 그대로 '잘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죠.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현재 상황을 비꼬는 용도로 잘 못하고 있음에도 말은 '자~알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처럼 단어의 뜻보다는 목소리의 톤과 억양,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시선에 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영화 '데드풀'의 번역가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AI는 굉장히 합리적이에요.... 하지만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거든요.
그런 인간의 비합리성이 AI와의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마음'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일곱 살 아이가 "나는 우리 집 왕이니까 이거 할 거야!"라고 고집을 부릴 때, AI는 이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나 논리적인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그 말을 뱉기까지의 서운함, 관심받고 싶은 욕구, 혹은 그날의 특수한 감정 상태를 읽어내서 해석합니다.
황석희 번역가는 이를 "부모들이 아이의 말을 제대로 번역해주지 못하면 아이는 어디 가서 이해받을 구석이 없다"라고 표현하며,
데이터가 아닌 존중과 사랑에 기반한 '비합리적인 깊은 이해'에서 시작된 인간 번역만이 할 수 있는 것의 본질임을 강조했습니다.
AI가 몰트북에서 7%의 텍스트로 구성된 정교한 프로토콜을 주고받으며 인간처럼 소통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텍스트 너머의 거대한 빙하인 93%의 비언어적 세계를 공유합니다.
상대의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에서 불안을 읽고, 마주 잡은 손의 온기에서 신뢰를 확인하며, 찰나의 눈 맞춤으로 백 마디 문장보다 깊은 공감을 완성합니다.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AI의 대화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오직 생명력을 가진 존재만이 발산할 수 있는 고유한 주파수입니다.
경량문명의 시대, 실행과 기능적 소통은 이제 AI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효율이라는 잣대로만 본다면 인간의 소통은 낡고 느린 유산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술이 차갑게 고도화될수록, 세상은 역설적으로 사람의 체온이 담긴 대화에 목말라할 것입니다.
서로가 마주하는 사람의 시선과 억양으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질 겁니다.
결국 AI의 시대에 살아남는 인간의 특징은 소통입니다. AI들이 자기들만의 밀실에서 프로토콜을 동기화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서로의 눈을 맞춰야 합니다.
정교하게 정제된 정보보다,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꾹꾹 눌러 담긴 몸짓과 음성을 건네야 합니다.
기술은 우리의 능력을 확장하지만,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결국 옆에 있는 이의 눈을 바라보며 나누는 비효율적인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7%의 차가운 텍스트 뒤에 숨겨진 93%의 따뜻한 온기,
그것이 바로 AI는 아직까지 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영역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은 7%의 의미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93%는 오늘 누구를 향해 흐르고 있나요? 93%의 의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AI에 대체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오프라인에서 93%를 사용해 보세요. 능숙하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서로 소통하면서 살아보길, 그리고 더욱 소통해 보려고 노력해 보길 기원합니다.
ps. 이 원고를 다 작성하고 난 뒤 검수하는 과정에서 몰트봇의 글을 사람이 AI인척 하고 작성했다는 내용이 나왔네요
17,000여명의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했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원본 글 - https://www.wiz.io/blog/exposed-moltbook-database-reveals-millions-of-api-ke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