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삶에 밑줄 긋기

퍼스널 트레이너의 삶

러닝 개런티

‘청춘 만화’라는 영화를 찍은 김하늘과 권상우는 개런티가 달랐다. 김하늘은 고정 개런티 1억 정도를 받았고 권상우는 흥행에 따라 받는 러닝 개런티를 선택했다. 결과는 영화가 대박 나서 권상우는 고정 개런티의 몇 배가 되는 개런티를 받았다.

참 재밌게 봤던 영화

내가 받는 월급(이 당시엔 기본급은 없었다. 현재는 기본급이 있다.)은 러닝 개런티와도 같다. 수업을 한 만큼 벌어간다. 그래서 매번 월급의 액수가 다르다. 그래도 직원으로서 받았던 금액보다 훨씬 대우가 좋았다. 그러나 처음엔 박봉의 생활을 버텨내야만 했다.

퍼스널 트레이너로 근무하면서 받은 첫 월급은 70만원이었다. 처음 들어와 보름 동안 가드 근무를 서면서 회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웨이트 기구도 사용해 보고 오픈 5시30분 근무와 마감 10시 근무를 섰다. 보름동안은 일한 대가에 대한 수당은 지급이 안됐다. 그 이후 보름동안의 수업 세션수를 계산하여 급여가 나왔다. 최저 임금보다 더 못한 월급이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수업은 다음 달엔 90만원을 받았고 그 다음 달엔 150만원을 받더니 넉 달이 지나서야 300만원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300만원을 벌려면 한 달에 100세션을 해야 나올 수 있는 금액이었다. 1세션에 6만원 중 6대4의 비율로 계산한 금액은 3만 원 정도이니까...

처음 몇 달은 ‘이 길을 잘못 선택 했나?’싶은 마음도 들었다. 첫 달 70만원은 가정생활에 큰 위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하고 싶고 꿈을 위한 일이라 하지만 밥벌이가 안 되면 철없는 짓이요 부부 사이의 금이 가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재화 생산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자들이다.


퍼스널 트레이너는 프로의 세계다. 프로는 돈이 생명이다. 최고의 몸값을 받기 위해선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퍼스널 트레이너 또한 실력에 따라 받는 급여가 달라진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센터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급수가 다 다르다. 3급, 2급, 1급, 그리고 마스터 급으로 나뉜다. 그리고 급수에 따라 세션에 대한 금액도 다르게 책정된다. 트레이너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서 더 높은 급수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싶어 한다. 좋은 제도다. 남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단계별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나는 현재 한 단계 상승된 2급 트레이닝에 위치하고 있다. 2급이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3급 시절 멋모르고 트레이닝 했던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를 가르친 스승인 권 마스터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지금은 퇴사 하시고 권스 연구소에서 교육과 프로그램 개발을 하고 계신다.

“진정한 프로의 마인드가 있다면, 그리고 프로이고자 노력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이고 그 가치가 더 한 직업이 퍼스널 트레이너이다.”


프로페셔널 한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9년 동안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전문적인 지식이다.


하지만 이 지식이 하나의 업적(스펙)을 이루기 위한 지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트레이닝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본인만이 체험한 기술이다.


즉 트레이닝의 스킬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나타내며 본인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립과 무게중심 그리고 관절의 움직임 범위 정도(ROM) 및 근육의 수축원리를 적절하게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술을 본인의 것으로 만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셋째는 다양한 트레이닝의 경험이다.


'아웃 라이어'라는 책에서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한 직업에 종사한 사람(시간으로 계산하면 일만 시간)을 일컬어 아웃라이어라고 칭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면 무언가 모를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 일만 시간의 현장경험을 통해 얻은 아우라는 그 어떤 세미나에서도 터득 할 수 없는 자신만의 특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노하우라고 말할 수 있는데 ,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지식과 트레이닝의 기술 그리고 트레이닝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이론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표현되고 전달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인 것처럼 자신의 노하우를 정립시켜야 한다.


네 가지 사항은 3급과 2급 그리고 1급을 나누는 지표로도 사용할 수 있다. 실제 3급 트레이너는 책에서 배운 내용을 전하기에 급급하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2급 트레이너는 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다. 그래서 한층 능숙한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 이정도가 되면 전문적인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나는 아직 2급에 머무르고 있지만 1급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그리고 먼 훗날 내가 가지고 있는 트레이닝 지식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싶다. 나는 올해로 마흔 둘이다. 퍼스널 트레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선생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 나이가 많아서 좋은 것은 트레이닝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들이 갱신되지 않아서 문제가 크다. 함께 일하는 퍼스널 트레이너들은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서 유익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데 혈안이다. 그들의 열정이 부럽다. 정신 차려야겠다. 개인 운동도 열심히 해서 배에 쌓여있는 가슴 근육을 다시 끌어 올려야겠다.

매달 세션 수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하지 못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러닝 개런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못 먹어도 고다.


인체의 면과 인생의 면

해부학을 공부해야 되는 전공자들은 인체의 3가지 면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즉 시상 면과 관상면 그리고 수평면이다. 시상면(sagittal plan)은 화살이 관통하는 면을 말한다. 사과를 화살로 맞춰 쪼개지는 면을 뜻한다. 그래서 옆면에서 일어나는 모습과 장기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용되고 관상면(coronal plan)은 전두면이라고도 하는데 왕관(corona)을 뜻하는 말이다. 얼굴을 앞부분으로 절단하면 둥근 원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이 어원이 유래되었다. 몸의 앞면을 절단했을 때 보이는 장기와 앞에서 바라봤을 때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평면(transverse plan)은 지면과 수평선상에서 움직이는 현상을 보기 위해서 사용된다. 병원에서는 뇌의 CT촬영을 통해서 뇌의 내부를 관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인체의 면


내가 전공하고 있는 피트니스 트레이닝 분야에서도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가령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시상면(sagittal plan)에서 움직임은 굴곡(flexion)과 신전(extension)의 방향성을 갖는다. 팔과 다리를 앞과 뒤로 움직일 때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관상면(coronal plan)에서는 팔과 다리를 옆으로 들어올리기 거나 안으로 모으기를 한때 앞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수평면(transverse plan)에서는 팔의 수평회전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 필요한대 그 예로서는 체스트 프레스(chest press)가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세 가지 면을 동시에 움직이는 운동 종목들도 있다. 예를 들어 볼링의 손과 몸동작은 나선형 즉 사선방향이다. 골프의 스윙 동작도 사선 방향이라 할 수 있겠다.


인체의 모든 움직임은 이렇듯 세 가지 면 위에서 독자적 혹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생 또한 세 가지 면 위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은 배움 면(learn plan)과 사랑 면(love plan)과 일하는 면(work plan) 위에서 다람쥐 쳇 바퀴 돌듯 반복하며 살고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율곡 이이선생님도 배움은 죽을 때 그만 두는 것이니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나또한 회원들의 욕구에 부합한 트레이닝을 위해 매일 책을 들여다본다. 가령 회전근개(rotator cuff) 파열인 환자를 운동시킬 때 더 좋은 운동방법은 없는지 골반의 바른 교정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책을 통해서 찾아보면서 터득하여 현장에 적용한다.

학문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린 고전이 있다. ‘성학집요 중 수신 중 성실 편’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별하며 독실하게 행한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폐하면 학문이 아니다.’ 그리고 이전에 나오는 문장은 배우는 자의 정곡을 말하고 있다.
‘남이 한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하고 남이 열 번 만에 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한다.’


사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표현된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있는 반면에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이웃을 향한 아가폐적인 사랑도 있을 것이고 처자식을 위한 가족애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각각의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간다.

‘인생의 반은 배우는 것이고 인생의 반은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배움과 사랑을 빼고선 인생을 논할 수 없다.


끝으로 일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일이 생계를 위한 수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


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이나모리 가즈오’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기자'라고 강조한다. 하고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무아지경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부딪쳐보면 그 일을 즐기게 되고 또한 일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능률을 높일 수가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일에 대한 노력과 집중력을 통해 그는 새로운 제품들을 창안해 내었고 남들이 풀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후 인생의 낙오자로 생활해 오던 이나모리는 단지 생각의 전환으로 일에 대한 몰입을 통해 후에는 27살에 전자부품 회사인 교토세라믹 주식회사를 창립한 이래로 통신회사 및 현재는 일본 항공(JAL)회장으로 취임하여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가 되었다.

경영의 신이라 블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인체와 인생의 각각 세 가지 면은 어떻게 움직여야 최고의 근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와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방향키와 같다.


전공 공부를 하면서 불현듯 삶을 이루는 요소를 생각해 보았다.


프리랜서의 여유로움


월요병이라는 말이 무색 할 정도로 내게 주어진 월요일은 한가롭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고속버스 터미널 역에 위치한 서점과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전쟁사라서 아는 지인이 추천해준 책을 구입하러 서점에 들렀다. 책 이름은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라는 책이다. 다소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는 책 제목이라서 조금은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사지 말고 한번 훑어보고 사자는 생각에 머리말과 목차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역시도 의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인의 추천이 있었기에 무시할 수도 없는 처사였다. 고심 끝에 책을 구매 했다. 거금 2만원을 주고...

그리고 난후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어서 박스 오피스로 향했다. 다행히 그 영화의 상영시간이 20분 뒤라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제보자’다.

옛날 전 국민을 상대로 구라를 쳤던 줄기세포 논문 조작에 대한 PD 수첩 기자의 헌신을 다룬 내용이다. 나는 영화의 내용 보다는 추인공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영화를 택하게 된 이유도 내가 좋아하는 ‘박해일’이 주인공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는 내가 즐겨 찾는 여가 행위다. 나의 로망은 차 트렁크에 좋아하는 책을 한가득 싣고 한적한 곳에 가서 일주일 내내 그것도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것이다. 옛날에도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자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사가독서’라는 휴가를 내려 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던데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분명 나는 세종대왕과의 코드가 잘 맞았으리라...


책과 영화 그다음엔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여유의 산물이다.


쇼윈도 사이로 서로 다른 풍경을 볼 수가 있다. 빠름과 느림이 창문 사이를 두고 스냅 사진처럼 비쳐진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에서는 음악은 흐르지만 시간은 멈춘 작은 안식처를 제공 해 준다. 이러한 분위기는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즐겨찾기’와도 같다.

남들과 다른 시작으로 한주를 여는 기분이 여유롭고 좋다. 마치 나만 특별대우 받는 느낌처럼 말이다. 거꾸로 흐르는 월요일이 긴장을 완화 시켜주고 일의 능률을 더욱 높여 주는 플러스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퍼스널 트레이너의 위기

수업시간에 운동 동작을 지도하다 다친 왼쪽 무릎 인대에 이상이 생겼다.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예상 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무릎 주변에 부종이 생기면서 걸을 때 ‘덜거덕’하면서 소리가 났다. 통증도 무릎 뒤쪽에서 묵직하게 느껴진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예감하고 금요일에 정골 수업을 들으러 가는 곳의 선생님께 무릎 상태를 점검 받았다. 무릎에 있는 십자인대 파열을 알아보는 테스트를 한 결과


“전방 십자인대 작살났는데요!”


역시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서 ‘전방십자인대 파열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검색어를 쳤다. ‘점프 시 내려오면서 ‘딱’하고 파열음이 나고 통증과 함께 부종이 생기며 걸을 때 흔들거리는 느낌이 오면 파열을 의심할 수 있다.’ “이런 제길, 완전 다 맞잖아!”

나는 완전 파열이 아니기를 바라며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밤새 냉찜질을 하였고 활동 시 압박 붕대를 하여 최대한 움직임이 없도록 고정했다. 그래서 그런지 걸을 때 통증도 많이 없어지고 무릎이 흔들리는 증상도 줄었다.

병원을 가야 하겠지만 아직 버틸 만 하다는 ‘야매 처방’을 내리고 무릎의 호전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말 병원은 가고 싶지 않은 지옥 다음의 장소다.

그리고 내겐 병원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병원에서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의심된다고 하면 며칠을 거쳐 MRI를 찍어야 하고 수술 판정이 나오면 3개월에서 6개월은 집에서 침상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밥벌이를 하지 못하게 되니 가정의 생계는 당연히 흔들리게 된다. 한 달 벌어 근근이 사는 ‘한 달 살이’인생에게는 수술은 치명적인 상황이 된다. 예전에 축구를 하다가 발목 인대가 늘어나 ‘반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략 이틀 정도만 쉬고 통증을 참고 수업을 했다. 그 이후로 아내는 내게 축구 금지령을 내렸다. “축구하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축구하다 다쳐서 처자식 굶겨 죽일 생각이야!”

나는 아프지도 못하는 인생이다. 결혼과 아이를 낳는 동시에 내 몸은 더 이상 혼자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번 생의 마음 경영은 다음으로 미루고 생활 경영에 집중해야겠다.

특히 몸뚱이로 밥 벌어 먹는 직업에 종사하는 트레이너의 삶은 정말 다치면 대책이 없다. 그것도 프리랜서로 일하게 된다면...

같이 근무했던 트레이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정말 우리는 아프면 끝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빨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루 종일 항아리로 물을 퍼 나르다가가 관절이 다 망가져 병원 신세 지기보다는 수도꼭지를 연결하고 물이 있는 곳까지 파이프를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해야 나중엔 힘들이지 않고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자유로 가는 인생/장영>이라는 책에서도 직업에 대한 사분면을 말하면서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을 사업가로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자면,

직업의 사분면이라는 파트가 있다. 첫 번째는 봉급생활자(employee)이고 두 번째는 자영업자(self- employed)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업가(business owner)이고 마지막으로 투자가 혹은 전문직(investor)으로 구분하고 있다.
직업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준 책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는 자신이 아프거나 일을 하지 못할 경우가 생겼을 경우는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사업가나 투자가는 똑똑한 피고용인을 찾아 그들에게 업무를 시키고 월급을 주며, 기업에서 올린 이익을 대가로 가져간다. 그리고 이 분면은 기업의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시간과 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영역이다.

내 나이 또래가 되면 ‘퍼스널 트레이닝 스튜디오’를 차려서 독립하는 사례가 많아진다. 함께 근무했던 몇몇 동료들도 어느덧 ‘개인 샵’을 내어서 입지를 돈독히 하고 있다. 그럴 때면 결혼 적령기를 놓쳐버린 노총각 신세처럼 “내가 부족해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그들은 입을 모아 충고한다. “밖은 전쟁터다. 야생 그 자체지! 준비 잘 하고 마음 단디 먹고 나와야 할 것이다.”


12시간 내내 센터에서 근무하는 내게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가야할 방향도 종국에는 시간과 부를 동시에 축적할 수 있는 곳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인데 무릎까지 이지경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스포츠 센터의 분위기는 예전과 같은 애사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한 경쟁구도로 운영진은 몰아가고 있다. 그것이 그들도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 요즘 인기 있는 TV 프로가 ‘미생’이다. 직장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안들을 해결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담아내고 있다.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죽어라 공부시켰는데 사회에 나가니 더 ‘죽어라, 죽어라’하면서 고생하는 직장인들을 보니 힘이 빠질 터이기에......,

나는 트레이너이다. 아내는 내 직업 명칭이 맘에 들지 않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져온 학교 서류에 ‘아빠 직업란’에 늘 ‘개인 운동사’라든가 ‘재활 운동사’라고 적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내가 센터에서 하는 일이 전문가와 같은 운동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너는 보통 직원의 개념으로서 ‘관리’의 역할이 주 업무인 부류와 전반적인 트레이닝을 가르치는 티칭의 성격을 갖고 있는 업무로 나눠진다. 그래서 명칭을 헬스 트레이너와 퍼스널 트레이너로 구분하여 부른다. 헬스 트레이너와 퍼스널 트레이너는 일을 대하는 마인드에서 차이가 있다. 헬스 트레이너는 회원을 응대할 때 기본 매뉴얼에 따라 지도하면 된다. 하지만 퍼스널 트레이너는 개인의 특성에 맞춰서 가르쳐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프로그램 디자이너’이다. 창작의 고통이 따른다.


그래 맞다. 창작의 고통이 뒤따른다. 고로 나도 예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이처럼 신경이 많이 쓰이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직업이 요사이 ‘1+1’이니 ‘5+2’이니 하는 끼워 넣기 식 싸구려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운영진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많은 회원들이 이용했으면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건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기업은 오로지 매출이다.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한 상사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매출이 좋으면 승진의 대로에 우뚝 서고 그렇지 못하면 백의종군을 종용받는다. 요즘 나의 센터에도 매출 하락으로 인한 칼바람이 불었다. 죽어나는 건 윗선이나 아랫선이나 매 한가지다.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자는 ‘십시일반’의 구호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서 우리들에게 선보인다. 일단 채찍부터 쳐들었다. ‘인원 감축과 재계약의 마지노선’을 상향 조절했다. 그리고 당근을 먹인다. ‘수업의 활성화를 위한 퍼 주기 식 무료 트레이닝 이벤트’로 트레이닝의 수효를 늘리자는 취지다.

새로 부임한 책임자가 있기 전 퍼스널 트레이너 출신으로 이곳에 스카우트 되어온 권 마스터가 그리운 요즘이다. 그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전문성에 관해서는 엄격했던 분이었다. 그래서 수업의 질을 위한 방안으로 3타임 연속으로 수업을 못하도록 했으며 매달 회원을 트레이닝 한 문서작업 일체를 점검 받기까지 했다. 또한 무료 이벤트니 신규 전화 상담 및 오리엔테이션이니 하는 부분들은 직원들에게 돌려서 수업의 집중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원이 하는 일들을 우리가 하고 있으니 퍼스널 트레이너의 전문성이 많이 퇴색되었다.


9년 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이곳에 온 이유도 오직 전문성에 맞는 트레이닝만을 하고 싶어서였는데 지금은 내가 직원인지 프리랜서인지 모를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격변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갈피를 잡을 수 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뿐이 다른 방법은 없는가? 박수칠 때 떠나고 싶은데 지금은 때가 아닌데.......,


사각 수영복

스포츠 센터에서 근무를 하려면 생활체육 3급(생체3급)자격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된다. 국가 공인 자격증임으로 나중에 법적인 소송 문제가 생기면 생체3급 자격증이 필요하다.

최근에 ‘체육 전문학교’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대상은 체육 전공자 및 일반인들이고 강의 내용은 생체 3급 대비를 위한 필기와 실기를 가르치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게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은 전원 합격을 했다.

나도 이들과 같이 생체3급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8년 전엔 생체3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 기관이 없었던 때라 혼자서 필기와 실기를 준비했다. 주변에 자격증을 취득한 경험자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노트에 빼곡히 예상 문제를 정리해 가며 공부를 했다. 시험날짜가 임박해서 보디빌딩 정규 포즈를 동영상을 보면서 자세를 취하다가 시험 당일에 복장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궁금해서 같이 근무하는 생체3급 자격증이 있는 선생에게 물어보았다. “저는 용인대에서 시험을 봤는데 삼각팬티에 상의 탈의 했어요” 나는 그 말이 진리요 생명으로 알고 시험 당일에 볼 삼각팬티를 구하려고 알아보았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수영 선생에게 사각 수영복을 빌려 입으면 되겠다 싶어서 검은색으로 빌렸다.

드디어 시험 날이 찾아왔다. 나는 시합을 앞둔 파이터의 비장함으로 서울대에 안에 있는 웨이트장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파이터 같은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 되었다. “아뿔사” 그런데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복장이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컨셉이 아니었다. 반팔 나시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입장을 하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내 가방엔 단지 사각 수영복뿐이었다.


매사에 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썬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옷을 빌리려고 해도 성격상 낯선 사람에게 말을 못 걸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내 순번이 다가 올수록 심장이 콩딱콩딱 뛰었다.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복장이 난처해서 자신감을 잃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탈의실에서 사각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줍은 표정으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상의탈의와 신발은 하얀색 농구화를 신은채로...

두 명씩 들어갔다. 내가 시험 볼 때는 칸막이는 없었다. 그래서 견 눈질로 옆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정규포즈 3번”이라는 구호가 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슬쩍 옆 사람의 포즈를 쳐다보고 동작이 생각나서 한 박자 늦게 자세를 취했다. 그런 식으로 한 번 더 포즈를 취하고는 바벨과 덤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벤트오버 로우 동작을 해 보세요”라는 지시에 맞춰 연습했던 대로 정확한 동작과 호흡법으로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시험관은 나의 복장이 너무 우스꽝스러운지 연신 입가에 가는 웃음을 지었다. 실기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세 명의 시험관 앞에 서서 구술시험을 기다렸다. “근육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해보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입고 있는 복장에 대한 쪽팔림과 함께 질문의 의도가 아리송했다. 속으로 “그 많은 근육을 어떻게 다 말하지!”하고 망설이다가 “큰 근육만 말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대흉근, 광배근, 둔근, 대퇴사두근이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시험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정확한 답을 말해 주었다. “근육의 종류를 말할 때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 할 수 있다. 심장근, 내장근 그리고 골격근으로......”

시험을 다 치루고 나와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제대로 시험을 보지 못해서 너무 상심이 컸다. 그리고 다시는 사각 수영복에 상의탈의는 하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더 웃긴 것은 내가 재수해서 다시 생체 3급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친구로 보이는 수험생들의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야! 작년에 졸라 골 때린 놈 봤다.” “사각 수영복입고 상의탈의에 하얀색 농구화 신고 들어간 놈 있었다. 졸라 웃기지?”

나는 재수해서 다시 생체3급에 도전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매번 강의 시간에 생체를 준비하는 수강생들에게 사각 수영복에 얽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면 한바탕 웃음의 시간을 갖는다. 시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대해서 잊어버린 얼굴을 한 채...

'대한 체육 전문학교'에서 생활체육지도자 (스포츠 지도사) 대비반 강의 중



생계형 트레이너

1월은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 계획을 일순위에 두고 열심히 하는 시기라 스포츠 센터에서는 성수기로 불린다. 그런데 비 성수기라 불리는 5월과 9월에는 수업이 없다. 수업이 많을 땐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지만 수업이 없을 땐 생계가 불안해서 걱정된다. 프리랜서의 직업은 롤로코스트를 타는 일인 것 같다.

퍼스널 트레이너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트레이닝의 색깔이 있다. 내가 근무 하고 있는 퍼스널 트레이너들도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각양각색이다.

어떤 트레이너는 이론에 자신이 있어서 전문 용어 섞어 가면서 회원을 지도한다. 특히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회원들을 수업 할 때는 더욱 진면목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론에 강하다 보니 실기적인 부분은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 공부를 많이 한 엘리트들이 다. 현장 경험보다는 책에서 공부한 이론을 토대로 수업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이러한 부류들은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실력자가 될 수 있다. 이론이 뒷받침된 실기는 가공할 만한 아우라를 지니게 된다. 그에 반해서 이론 보다는 실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트레이너가 있다. 이러한 부류는 대부분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경우다. 산전수전 공중전 그리고 우주전 까지 다 겪은 철학이 있는 트레이너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운동 동작과 효과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 지식을 모르고 있기에 그저 두리 뭉실하게 설명을 한다. 나이가 많거나 설명 듣기를 싫어하는 높은 직위에 있는 임직원들에게 환영받는다. 경험이 많은 트레이너들은 학자들이 증명한 이론적 가설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정형외과에서 말하는 임상적 지식들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론과 실기를 적당히 알고 있는 트레이너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트레이닝하고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내세울만한 스페셜 한 테크닉이 없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트레이닝을 곁눈질 하면서 그때그때 모방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약간 변화를 줘서 트레이닝에 적용한다. 이러한 경우는 보통의 회원들을 트레이닝 할 경우엔 매우 활용도가 크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하고 트레이닝에 대한 지식이 있는 회원들을 만나면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다. 설명을 하면서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기에 중언부언하게 된다.

나는 이 부류 중에 어디에 속하고 있는가? 임상적 경험으로 친다면 9년 동안 대략 300명을 트레이닝 했고 학교 수업과 기타 세미나를 합치면 박사 학위정도의 공부를 해 왔다. 그러면 이론과 실기에 모두 강점이 있는 트레이너의 부류에 속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론과 실기가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트레이닝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이유가 뇌리를 스친다. 그것은 단지 이 일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일의 즐거움과 일을 통한 자아실현에 대한 의미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체육학과를 나와서 취업할 곳이 스포츠 센터에서 트레이너로 근무하는 것이 쉬웠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졸업장과 자격증이 있으면 더 좋은 대우로 근무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솔직히 트레이너의 삶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 일을 하고 싶다.

행복의 비밀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현재 내가 해야 하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삶은 좋아하고 싶지가 않다. 지친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지금껏 경험하고 공부했던 이 일을 그만둬도 나는 아깝지 않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 ‘생계형 트레이너’. 나는 올해로 마흔 둘이다. 언제까지 현장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은데 앞길이 막막해서 조금 더 버텨야한다. 그렇다면 다시금 용기백배하여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불쌍한 회원이 절름발이 트레이너에게 절름발이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그 회원은 나중엔 절름발이가 돼버린다.

다시금 회원의 프로파일을 작성하고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하고 관련성 있고 도달가능성 있고 마지막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서 트레이닝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계획을 설정 해야겠다. 나의 스승이었던 권 마스터가 항상 입이 달도록 말했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방법론을 다시금 숙고해 본다.


나는 감동을 주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올해로 트레이너로서 일한지 14년차다. 스물아홉 살에 처음 시작한 이래로 마흔 두 살이 되기까지 스포츠 센터에서 트레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5년은 직원으로써 일을 했고 8년은 프리랜서인 퍼스널 트레이너로써 종사하고 있다. 내가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시간 관리를 잘 하여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림동에 위치한 대형 스포츠 센터에 취직을 했다. 그 당시 가지고 있었던 자격증은 사단법인에서 제공하는 ‘건강관리사’외에 국가 자격증(생활체육 지도자)은 없는 상태였다. 트레이너라는 직업 명칭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야말로 사회 초년생으로써 모든 것이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한 달 월급이 120만원(4대 보험 포함)이었다. 타 회사의 대학생 초봉이 180만원 정도였으니 대우가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트레이너가 되기 위한 자격을 위해 현장 경험과 필요한 공부를 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 나는 트레이닝의 지식을 얻고자 신문과 잡지 그리고 전공서적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그리고 전철에서 휴대용 수첩을 이용하여 새로운 운동 방법 및 스트레칭 동작 등을 스크랩하여 틈틈이 이동 중에 꺼내보곤 했다.


1년 365일 내내 트레이닝에 대한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책을 통해 익혔던 운동 동작을 몸으로 터득하기 위하여 하루 3시간씩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혼자의 힘으로 재화를 생산해 낸다는 뿌듯함이 있어서 참을만했다.

학부에서 배운 공부는 정말 날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독학으로 하나씩 트레이닝의 방법론에 대해서 정립하였다.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이론과 실기 외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운동을 하다가 손상을 입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무턱대고 재활에 관련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국민대학교 ‘운동처방 및 재활’학과 대학원을 입학했다. 대학원 생활은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토론을 했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생에 처음으로 논문을 쓰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 생활체육 지도자 1급(운동처방)과정에 응시했다. 그 당시 생체1급 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체육학 석사 졸업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재수를 하고 생체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학교 입학이래로 느꼈던 짜릿한 성취감을 맛봤다. 그렇게 해서 나는 트레이너로써의 면모를 하나씩 갖춰 나가게 되었다.

30대 초반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나는 현재 퍼스널 트레이너다. 나를 가르쳤던 권 선생님께서 퍼스널 트레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나는 이 내용을 늘 마음속에 새기며 트레이닝에 임한다.

‘회원의 생활습관 즉 식습관, 운동습관, 자세 등 신체와 정신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분석합니다.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회원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효과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디자인하여 안전하고 재미있게 피트니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 합니다. 더 나아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는 ‘숀리’와 같은 유명한 트레이너가 아니다. 그리고 추호도 ‘숀리’와 같이 유명세를 타고 싶지도 않다.


유명하게 되는 순간부터 트레이너로써의 삶이 고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보면 삶을 누릴 시간이 없어진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다보면 어느덧 불행이 엄습하게 된다. 불행의 시작은 내 삶이 없을 때부터 찾아온다.

트레이너는 가늘고 길게 굽은 산이 선산을 지키듯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현재 9년째 한 곳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내게 거처 간 회원만 해도 300여명이 넘는다. 중학생 회원이 지금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9년 동안 내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회원도 있다.


나는 능력 있는 트레이너이기 보다는 훌륭한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그 트레이너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최고의 찬사는 아닐지라도 보람된 평이라 생각한다. 괜찮은 트레이너는 회원과 함께 늙어갈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수식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감동을 주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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