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속까지 트레이너

프리미어의 세계


특별한 퍼스널 트레이너 채용 시험


9년 전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이곳(호텔 신라 삼성 레포츠 센터)에서 퍼스널 트레이너를 모집한다는 채용 공고가 있었다. 그 전에는 트레이너로써 센터를 운영하는 관리자 역할을 해 왔다. 내가 트레이너에서 프리랜서인 퍼스널 트레이너로 전향한 이유는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고 싶어서였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 많은 일을 했다. 회원관리를 비롯하여 G.X 수업과 매년도 사업계획 발표 등 맡은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일에 비해 내게 돌아오는 급여가 너무도 박봉이었다. 늘 밥벌이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하고 싶은 갈망이 컸다.

다니고 있는 센터에는 하루 월차를 내고 도곡동에 위치한 반트(호텔 신라 소속)로 향했다. 그곳의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가슴이 떨렸다. 엄청난 규모의 대형 스포츠 센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채용 공고를 보고 모여들었다. 모두 28명이었다. 서로를 경계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두 시간 동안 필기시험이 있었다. 두 시간 내에 20 문제에 해당하는 서술형 답안을 작성했다. 완전 단백질에 대해서 서술하라는 문제부터 근수축의 원리를 묻는 문제와 당뇨 환자의 운동 프로그램을 2주짜리로 작성하라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출제되었다. 그때 당시는 문제의 난이도가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20 문제 중 1 문제를 풀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쓰지 못한 문제는 햄스트링을 구성하는 근육을 쓰라는 내용이었다. 햄스트링이라는 근육은 그저 뒷다리에 붙어 있는 근육이지 4가지 근육의 총칭인지 전혀 몰랐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웨이트 존으로 장소를 옮겼다.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기 시험을 보는데 캠까지 동원되어 우리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촬영했다.

처음 실기를 본 종목은 벤치 프레스였다. 실기 방법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벤치 프레스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나머지 응시자들은 자연스럽게 시범을 보인 응시자의 동작에 대해서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아무 말도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동작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응시자들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회전 근개가 어떻고 코어가 잡히지 않았고’하는 생소한 영어 단어를 곁들여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동작을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저 회원들에게 동작만 가르쳐 주고 카운터만 셀 줄 아는 트레이너였다.

시험을 다 치르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향해지고 있었다. 합격에 대한 기대는 둘째 나는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은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시험을 보고 큰 다짐을 했다. “큰 판에서 놀아야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 성운 씨 되시죠?”

“2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면접 보러 오세요.”

나는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면접 보러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영문을 몰랐다. 전혀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점수가 아니었다. 실기시험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서있기만 했기에 지금의 결과는 너무도 의외였다.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서 대략 예상문제를 꼽아서 준비했다.

드디어 면접관이 들어왔다. 그런데 고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전에 실기시험을 볼 때 인상 깊게 남았던 권 마스터 트레이너라는 사람이었다.

심층 면접으로 총 열 번의 질문이 주어지는데 특이한 건 다섯 번은 내가 면접관에게 질문을 해야 했다. “뭐, 질문을 통해 생각의 수준을 알 수 있다나......,”

그 당시 기억나는 내용은 ‘이곳을 지원한 동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에 축구를 비유하면서 대답을 했다.

“면접관님! 축구 좋아하세요? 전 지금 박지성과 같은 마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였고 지금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충분히 지금껏 준비해 온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될 것 같아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는 면접관에게 질문을 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실기 시험을 제대로 못 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2차 시험에 합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면접관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을 했다.

“자네의 필기 성적은 좋았네. 그런데 실기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더군. 하지만 자네가 보낸 메일의 내용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서 최종적으로 자네를 뽑게 되었다네!”


“다른 응시생들의 메일은 하나 같이 잘 부탁한다는 형식 성 멘트였는데 자네는 진정성 있게 메일을 썼더군. 그래서 트레이너로서의 마인드가 좋아 보여서 자네를 선택하게 됐네!”


그 당시 나는 시험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정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메일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담은 각오와 같은 내용이었다.

“너무도 좋은 기회였습니다. 시험의 결과를 떠나 현재 저의 트레이닝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것을 하나씩 채워 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경험하겠으며 무엇보다도 절름발이 트레이닝으로 회원을 똑같은 절름발이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 성운 씨, 앞으로 잘 해봅시다. 기대가 큽니다.” 드디어 악수와 함께 2시간가량의 심층 면접이 다 끝났다. 나는 너무도 가슴 벅찼다. 퍼스널 트레이너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총 6시간 동안 채용시험을 치렀다. 깜짝 놀란 사실은 28명의 응시자 중 2명만 합격한 것이다. 14:1이라는 경쟁률을 내가 뚫다니......,


그당시 면접관 이었던 권오영 마스터 트레이너는 늘 전문성을 강조 하셨다
2015-12-16+23.52.09.png 현재는 호텔신라 삼성 레포츠 퍼스널 트레이너 9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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