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었던 트레이너의 삶

다시 찾은 내 길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사회 초년생(2002년 9월)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졸업이 다가왔다. 하지만 졸업 후의 진로가 뚜렷하게 결정된 것이 없기에 또다시 허무감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의 플랜이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나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한 공부에 전념하고 졸업 후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님께 찾아가 진로에 대해서 상의를 했다. 그러나 체육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은 너무도 좁은 문이었다. 전공을 살려 하는 일이 유학 박사과정을 이어서 하는 것이고 사회에서 고작 스포츠 센터에 취업하여 트레이너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분야는 축구 선수들의 재활 트레이너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 어려운 일이었다.(벌써 로비를 다 해서 갈 사람들은 내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2002년 9월에 끝이 났다. 월드컵 응원을 끝으로…….


졸업 이후에 처음 취업하게 된 곳은 보험 회사였다.

대학 졸업 후 생애 첫 직장이 될수 있었던 곳

그 당시에 보험 쪽으로 취업하려고 원서를 써낸 대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내가 원서를 낸 동양생명도 9대 1의 경쟁률이었다. 아무튼 체대를 졸업한 스펙은 보험회사가 바라는 인재상과 잘 맞아떨어져서 취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한 달 동안 ‘보험 설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시청에 위치한 회사로 출퇴근했다. 오전 9시부터 퇴근 시간까지 내내 자격증 준비를 위한 시험공부를 했다. 예상문제를 달달 외우고 또 외웠다. 그렇게 한 달 여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험문제는 외운 곳에서 100% 다 나왔다. 설계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그다음날 회사 연수를 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보험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자꾸만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의 여정에서 빗나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연수원 가기 전날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이 길이 올바른 선택인가?” 그리고 결정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내일 연수원 못 가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한 달간을 방황하고 끝내는 스포츠 센터 트레이너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오픈 맴버였기에 더욱 생각이 많이 났던 보래매 스포츠 센터

내가 들어간 곳은 오픈을 앞둔 센터였기에 할 일들이 많았다. 전단지를 돌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락카 열쇠고리 만드는 일까지 손가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29살에 처음 들어간 직장이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곳도 6개월 일하고 그만두었다. 그때는 정말로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겪게 되었다. 인생의 쓴맛의 정체는 허황된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일하고 있는 센터에 고등학교 선배가 우연히 회원으로 운동을 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선배는 마침 홍대 쪽으로 스포츠 센터를 차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후배를 만나서 나를 좋게 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사업 설명을 그럴듯하게 프레젠테이션 하고는 홍대에 오픈할 장소까지 함께 보고 왔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좋은 조건으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뿌리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곤 잘 다니던 센터를 그만두고 학교 선배와 함께 사업 구상을 하면서 조금씩 센터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간에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사업 투자자인 선배의 어머니가 갑자기 스포츠 센터 사업을 접은 것이다. 그래서 투자를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보름 동안 계속 그 선배와 함께 다니면서 백방으로 설득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나는 그 뒤로 선배와 결별하고 다시금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전전 긍긍하였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곳이 정수기 판매 회사였다.

그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 이름은 청호 인터내셔널 이었다.

‘청호 나이스’라는 정수기 회사는 익히 잘 알고 있어서 탄탄한 회사라 생각하고 입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보름간 정수기 역사부터 시작해서 필터의 종류와 가수분해 원리 등등의 영업 비밀에 대해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자신 있었다. 왜냐하면 정수기 한 대를 팔면 나에게 떨어지는 수당이 10%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한 달에 300만 원짜리 정수기 10대 팔면 나에게 300만 원이 통장에 들어온다는 무모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달에 정수기를 딱 한 대 팔았고 통장에 10만 원이 찍혀 들어왔다.(그 한 대마저 부모님이 팔아 주셨다. 100만 원짜리로) 정수기를 팔면서 나는 있는 자존심마저 다 버렸다. 처음엔 맨땅에 해당하지 않으려고 아는 지인부터 찾아갔다. 교회 사람들 먼저……. 그러나 하나 같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시종일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눈치를 채고 설명하고 있던 책자를 덮고는 태연하게 대문을 나왔다. 그리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자신 있었던 정수기 판매 일도 열흘을 못 넘기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다시 돌아온 곳이 스포츠 센터였다.
먼 길을 숱한 우여곡절 끝에 돌아왔다. 그렇게 시작한 트레이너 생활은 현재 14년 차가 되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트레이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지금은 트레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 있다.
4년간 국제 청소년 센터 간사로서 헬스장에서 근무한 곳
20151211_121751.jpg 트레이너의 삶을 위해 취득했던 국가 공인 자격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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