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 수 없는 배냇병, 글쓰기

글쓰기 습관

배냇병의 사전적 의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병이라는 뜻으로, 고질적인 증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글쓰기가 좋았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 수련회에서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좋은 말을 쓰는 롤링페이퍼에 한바닥씩 글을 남기곤 했다.

또한, 군대에 가서도 편지를 자주 썼으며, 일기는 시간 나는 대로 기록해 두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도 항상 설교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설교 내용을 적다가 갑자기 글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계속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설교를 듣지 못하고 예배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집에 와서는 영화에 대한 줄거리를 간략하게 적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을 덧붙인다.

그렇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 참 좋다. 지금도 그런 행위는 여전하다. 몇 해 전부터는 독서 노트도 시작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도 200편이 넘는다. 아는 지인이 나의 독서 노트를 보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힘들게 뭣하러하냐”라고 핀잔을 준적도 있다.

남들이 보면 글쓰기는 골치가 아픈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 지고 행복감이 넘쳐흐른다.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되고자 맷집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맷집이 필요한 것인가. 여기서 맷집의 의미는 전업 작가를 말한다.

43세에 ‘토지’를 썼던 박경리 소설가는 생계를 위해 허리춤에 호미를 차면서 여차하면 텃밭에 나갔고,

내게 수필을 가르쳤던 박상률 선생님도 글을 쓰다가 굶을 것을 대비하여 택시기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는데,

이 정도의 시간의 시련이 필요한 것인가.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은 주경야독이다.

퇴근하고 세 시간을 확보하여 글을 쓰는 틈새를 공략하는 부류다.

그 세 시간은 양의 총합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아무 데나 널브러져 생각의 일면들을 번역한다.

퇴근하면 세 명의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자상한 아빠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도 이만큼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프리랜서이기에 가능하다.


분명 나와 같은 처지에서 글을 짜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뤄보고 싶어서 책 쓰기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늘 에서야 인생의 첫 책을 냈다.

글쓰기는 책 쓰기와는 다른 장르로 취급해야 됨을 절실히 느꼈다.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12485458





글쓰기 자체로도 삶의 시너지 효과가 크지만, 한 번쯤은 글을 모아 책 쓰기에 도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나가는 작업은 무언가 이룰 목표가 있어서 글쓰기 자세를 곧추 세울 수 있어서 좋다. 설령 원고가 출판사의 선택을 받지 않더라도,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는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글쓰기가 본업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을 아껴 사는 내 모습이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배냇병과 같은 내 글쓰기 행위가 노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트렌드)이라는 날줄이 만나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영역이라 본다. 그저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말처럼, 땀을 흘리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펜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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