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라면을 끓이며>의 김훈 산문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많은 글을 보아 왔지만 김훈의 글은 독특하다. 지은 사람을 보지 않고 글만 읽어도 단박에 그가 쓴 글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사물을 들여다보는데 뛰어난 촉수를 지녔다. 책의 소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밥, 돈 몸, 길, 글
한 여름철 즐겨 먹는 수박은 그저 순간의 더위를 해갈시키는 수분과 당분이 적절히 조합된 착한 과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훈 작가의 촉수에 들어온 수박은 새롭게 태어난다.
책에서 묘사한 수박의 숨은 세계를 들여다보자.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이 반쯤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 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한바탕의 완연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칼 지나간 자리에서 홀연 나타나고, 나타나서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돈과 밥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바로 이것이다. 사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그리고 이 구절을 읽지 않았다면 수박에 대한 기가 막힌 묘사를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수박에 대한 식물학적 특징에 국한 된 지식수준 정도...
여기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명명 백백’해진다. 그것은 생각을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는 트레이닝의 한 방법인 것이다.
비록 전공서가 아닌 인문학(문학, 역사, 철학)을 읽지만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분야이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는 그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인문(人文)’의 숨은 뜻이 ‘인간이 그리는 동선’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내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인 ‘사람의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 또한, 사람이 어떻게 잘 움직여야지만 아프지 않고 오래 그리고 잘 생활할 수 있을까를 주로 연구한다.
그러니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인간의 움직임 패턴’은 어찌 다르다고 볼 수 있겠는가.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옛날 중국에서는 시인을 견자(見者)라고 불렀다. 즉 사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시인인 것이다. 새를 보고 나무를 보고 폭포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려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을 분석하는 트레이너는 ‘시진(視診)’으로 사람의 서 있는 자세와 누워 있는 자세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동작들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무엇이 잘못됐는지 원인을 파악해야만 한다.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
이 짧은 문구에 인생이 다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도 세월 속에서 풍화되고 지난한 시간들을 견뎌야만 하며 그리고 나중엔 늙어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인공렌즈 치환술’이라는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은 백내장 수술과 매우 흡사하다. 단지 성능 좋은 다 초점 렌즈의 기능이 추과 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시간의 시련을 겪으면서 사람의 몸은 소모품처럼 하나씩 부위별로 갈아야 한다. 많이 사용한 부위를 ‘퇴행성’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린 으레 ‘퇴행성 관절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그래서 인생은 소모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책을 통해 생각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과 운동을 통해 생존을 위한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은 그래서 닮았다. 이 둘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 것이다. 어느 것이 ‘악어’고 ‘악어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