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고치 같은 사람

내향적인 트레이너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번데기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누에는 자기 몸 안에 있는 실을 이용하여 고치(집)를 만든다. 조금씩, 조금씩 실을 토해 내어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홀로 집에서 무엇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컬어 ‘누에고치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부류는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내성적 성격과는 거리가 먼, 말과 몸짓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지적 상품을 팔기 위해 외향적 기질을 발휘해야 만 한다. 그러한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인 내게 두 성격의 절충을 위해 선택한 행위가 글쓰기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공강 시간이 생기면 나는, 미리 눈도장을 찍어 둔 곳으로 이동하여 책과 노트북을 꺼낸다.(나는 프리랜서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에 잠기면 곧바로 ‘한글과 컴퓨터’ 워드 란에 단상들을 적는다. 때론 이런 행위에 대해서 회사 동료들에게 ‘이기적인 유전자’라든가 ‘개인플레이’ 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핀잔을 듣기도 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인 퍼스널 트레이닝은 약속된 시간 안에서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수업은 1시간으로 짜여 져 있다. 동작을 시행하고 난 이후엔 휴식시간을 갖는데 보통, 근지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이면 30초 내지는 1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근육을 크게 만들기(근비대) 위해선 대략 1분 30초 정도 휴식을 갖는다. 그렇게 보낸 휴식 시간을 합치면 거의 10분 정도가 된다. 그리고 동작을 10회에서 20회 반복을 3세트(set)하면 얼핏 10분 정도 걸린다. 이와 같이 다섯 동작을 수행하면 50분이 걸린다. 그러면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의도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경우도 있다. 회원이 전날에 회식을 하고 술이 안 깨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수업을 오게 되거나 혹은 몸살이 걸리기 직전의 으슬으슬 근육통을 호소하게 되면 준비된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 할 수 없게 된다. 이럴 땐 휴식 시간을 좀 더 길게 가거나 매트에서 스트레칭 수업으로 대체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평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쓴 내용들에 대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혜경궁 홍씨’의 후예인 회원에게 ‘한중록’에 대한 책을 소개 한 적이 있다. 사도세자인 남편의 죽음을 통해서 아들인 이산(정조)을 보호하기 위한 한 여인의 구슬픈 삶에 감동 되었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준비한 내용을 소화해 내지만 수업 내내 운동만 지도하지는 않는다. 트레이닝을 진행 하는 동안 회원과 대화를 많이 주고받는다. 동작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를 설명해 주기도 하지만 회원의 관심 사항에 대해서 대화를 하기도 한다. 물론 수업 동안에 말을 한마디도 안하고 오로지 운동만 하는 회원도 있다. 그러나 그런 회원은 열 명 중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뿐이다.

어느 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좋아하는 70대 회원님께 <이승만의 삶과 국가 / 오인환 >라는 무려 611페이지나 되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다음 수업 시간까지 꾸역꾸역 다 읽고는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까지 한 적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독립투사이었음에 새삼 놀라웠다.


뼈 속까지 내향적인 나는, 일을 위해서 극복했던 또 하나의 노력이 있다.

퍼스널 트레이너가 되어 일한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에 회원과의 첫 만남은 초긴장의 순간이다. 생면부지로서 처음 만나는 순간이기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향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첫 대면에서도 자신감 있게 대화의 분위기를 리드하면서 나갈 터 인데 천상 내성적인 내게는 부담감과 함께 혀의 경직이 일어난다. 특히나 젊고 도도한 여성 회원 앞에서는 머릿속 지우개가 말하고자 했던 대본들을 모두 지워 버린다.

그러한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방법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곤 했다. 또한 다양한 지식이 머리에 쌓이게 되면 유연하게 대화를 주도해 나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설프지만 칼럼을 써서 차곡차곡히 블로그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지금은, 마치 누에가 만든 집에서 번데기의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나비가 되어 푸르른 창공을 훨훨 날아갈 수 있게 된 듯 회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편안함을 지니게 되었다. 누에고치와 같은 성향을 활용한 나만의 방식이 잘 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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