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의 절대 법칙
‘고미숙’이라는 고전 평론가의 책(몸과 인문학)을 읽는 중에 ‘몸의 순환’에 대한 글귀가 마음속에 파고들어 책을 덮고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
『동의보감』은 말한다.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라고.
통즉불통(通則不痛 ‘통하면 아프지 않다’/痛則不通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만병의 근원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동의보감’에서 재확인하는 순간, 전율에 사로잡혔다. 흐름의 트레이닝을 해 왔던 운동의 방향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흐름(flow)의 트레이닝’에 대한 내 나름대로 정의한 글이다.
“인간의 몸은 유기적 관계로 연결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기능은 다른 기능을 위한 상호 작용을 한다. 또한 인체는 자연 치유력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DR. Still의 이론을 바탕으로 림프와 뇌척수 그리고 혈액의 3대 순환을 돕기 위한 근막 스트레칭과 바르게, 잘, 그리고 자주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운동프로그램(LSS)을 누워서(Lying), 앉아서(Sitting), 서서(Standing)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여 몸의 기능(순환)을 회복시키는 것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트레이닝의 본질이다.”
통즉불통.(通則不痛 ‘통하면 아프지 않다’/痛則不通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정말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는 문장이다.
고미숙 작가의 몸을 탐구하는 글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밖으로 발산되지 않은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해진다.”(니체) 적대감과 원한이 싹트는 토양이다. 그 힘이 나아갈 방향은 두 가지뿐이다. 자기를 학대하거나 아니면 타자를 짓밟거나. 전자가 우울증 혹은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맹목적 분노 혹은 폭력중독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생명의 물리적 법칙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 가지는 자폭이고, 또 한 가지는 ‘묻지 마 폭탄’이다. 내안에 헐크가 튀어 나오는 순간인 것이다.
이 또한 ‘통즉불통’이 원인이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체계가 막혀버린 것이다.
마음은 몸(근육)과는 달리 지배하는 신경이 다르다. 보통 골격근이라고 하는 몸(근육)은 체성 신경인 운동신경에 지배를 받는데 마음은 자율신경의 영향을 받는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율신경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원흉인 것이다.
그래서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해결책이 있다. 바로 걷기다.
홍혜걸 의학 전문기자가 쓴 책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는 건강 이야기』에서는 목적에 따라 운동을 세 가지로 분류 하면서 그 중 한 가지로 신경을 위한 운동을 말하고 있다. 신경 운동은 심장이 가볍게 뛰는 정도의 저 강도 운동인 걷기다. 즉 걷기는 자율신경 중 부교감신경의 리듬을 회복시킬 수 있다.
또한 우울증과 폭력증세에 시달리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세로토닌의 닉네임은 행복전달물질이다. 감탄하고 감동받으면 비처럼 쏟아지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세로토닌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또한 걷기다. 몸을 움직여 가볍게 걷는 것이다. 그것도 햇볕을 쐬면서...
<<감정은 습관이다>>의 저자 박용철도 세로토닌 분비를 위한 방법으로 걷기와 햇빛을 쐐는 것을 들었다.
걸으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땀이 뻘뻘 날 정도로,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해서 느끼는 쾌감은 도파민에 의한 것이다, 가볍게 걸어라.
그리고 햇빛을 쐐라. 겨울철과 장마철에는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 햇빛이 부족해 세로토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몸의 순환을 위해서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듯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通)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중국 고전인 주역서에서 나오는 말이다.
궁하다는 말은 사방이 막혀서 궁지에 내몰린 상황이고 그 해결책으로써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모조리 엎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고자 하는 실천력이다. 그러면 통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견고해 져서 오래토록 영원할 것이다.
여기서도 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통즉불통(通則不痛, 痛則不通) ’은 모든 인간사에 대한 황금률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