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중재의 현장
아이들이 싸울 때 감정코칭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던 지점이다. 감정코칭은 일대일의 관계에서만 해야 한다. 다른 관객이 있을 때 감정코칭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 때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렵고 솔직해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이 없을 때
단 둘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솔직하게
특히나 갈등이 있는 상대가 옆에 있을 때는 감정코칭 할 수가 없다. 감정코칭은 옳고 그르고의 판단을 잠시 접어두고 엄마인 내 생각이나 조언 같은 것도 내려놓고 온전히 아이의 이야기만을 집중해서 들어줘야 하는데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 한쪽 아이의 말을 판단도 조언도 안 하고 공감만 하면서 들어주다 보면 반대쪽 아이는 억울하고 속상해질 것이다. 두 아이가 싸울 때는 우선 두 아이를 분리시켜 놓고 따로따로 한 번에 한 아이씩 감정코칭 해줘야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자기가 화가 난 부분, 억울했던 점, 불쾌한 순간들을 인내심 있게 들어줘야 한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번번이 실패한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엄마도 엄마 생각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이건 누구 잘못이니까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고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뻔한 지시를 내리게 된다. 그러면 두 아이 모두 반발하고 모두가 기분이 나빠진 상태로 끝이 난다. 그래도 어려운 중에 무수히 감정코칭을 시도하다 보면 아이들 갈등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아이마다 특성이 있고 자기한테 중요한 가치가 있어서 그렇게 자기에게 중요한 가치가 좌절될 때 서로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내용을 엄마만 아는게 아니라 각자 아이들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성공적인 감정코칭이다.
우리 집 전쟁의 대부분은 작은 아이가 심심해졌을 때 형을 귀찮게 굴면서 시작이 된다. 요즘 큰 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큰 아이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작은 아이가 다가와서 이런저런 도발을 시작한다.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아무리 말려도 끈질기게 쓸데없는 장난을 치는 작은 아이 때문에 큰 아이가 화를 내고 나도 짜증이 나고 만다.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지 나무라는 심정만 가지고는 도저히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심심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형한테 장난을 치면 뭐가 해소가 되는지 최대한 작은 아이 마음을 그려보면서 인내심 있게 들어주어야 한다.
어느 날 작은 아이하고 대화하다가 자기는 그냥 재미로 형을 괴롭히는 거고 형이 화를 내면 자기는 기분이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그만 화가 나서 야단을 치고 말았다. 남이 짜증 내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되고 아이에게 화가 나고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야단을 맞은 작은 아이는 억울해하면서 엄마가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라며 항변했다. 그러더니 ‘어떻게든 형이 나하고 놀게 만들어야 될 거 아니야…’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절박한 목소리와 우는 얼굴을 보니 형하고 어울리고 싶은 동생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가 한 항변 안에 진실이 녹아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성향대로 매 순간 자기만의 어떤 감정을 느낀다. 자기가 느낀 감정에 대해 야단을 맞으면 누구든 억울하고 화가 난다.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또 깜박 잊었다. 형이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심지어 형한테 몇 대 맞더라도 형의 반응을 이끌어냈을 때 기분이 좋은 동생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형이 화를 내면 자기는 기분이 좋다는 표현만 듣고 어떻게 이렇게 못된 녀석이 있을까 하면서 그건 나쁜 마음이라고 단정해버렸다. 그러지 말고 '너한테 그만큼 형의 관심과 반응이 중요한 거구나'하고 마음을 받아주고 인정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고 나서 '네가 기분이 좋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형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더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라고 하던가, '요즘 형이 혼자 있고 싶은 시간도 필요한가 봐. 몇 번 부탁해도 형이 놀아주지 않을 때는 나 혼자 노는 방법도 몇 가지 생각해 보자…'라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두 아이 사이의 문제가 아니었으면 나도 좀 더 차분하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의 감정에 집중해 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두 아이 모두 내 아이고 내가 두 아이의 모두의 엄마기 때문에 두 아이 사이에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둘이 평화롭고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빨리 판단을 내려서 어떻게든 갈등을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갈등을 겪으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을 돌아보면 갈등을 무조건 두려워하고 피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이 둘 사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큰 아이가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해질 만큼 많이 컸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동생하고 멀어지고 싶고 동생이 귀찮을 때도 많다는 것, 작은 아이는 그런 형에 대해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다는 것, 겉으로는 작은 아이가 못되게 굴지만 마음만은 그냥 형하고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 작은 아이한테 형의 관심과 반응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서 비록 부정적인 반응이라 하더라도 형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저런 책략을 써 보는 것일 뿐 아이 자체가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것, 모든 사람의 감정은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는 없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 엄청난 변화를 단번에 이룰 수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과정 중에서 이미 배우는 것이 많고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작은 아이가 형과의 갈등과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들과 내 마음이 한 뼘쯤 성장하는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내일은 제발 보다 평화롭고 더 화합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