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예전에 저하고 했던 약속을 안 지켜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를 양육하면서 늘 부딪히는 이슈다. 나도 아이에게 감정코칭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났다. 아이의 감정을 잘 들어주고, 공감도 충분히 해 주고, 그리고 나름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을 제시해서 아이에게 동의를 받아 냈는데 아이가 다음 번에 그 약속이 지키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동생과 핸드폰을 두고 싸우면 둘 다 하루동안 핸드폰 사용을 안 하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들도 동의를 했는데 다른 날 형제가 핸드폰을 두고 싸움이 나서 핸드폰을 빼앗았더니 둘다 격하게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감정코칭을 포기하고 따끔하게 야단을 쳐서 고집을 꺾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엄마가 감정코칭을 한다면서 행동코칭을 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엄마 생각에는 이만하면 충분히 아이 이야기도 들어줬고 아이 감정에 공감도 해줬고 나름 아이의 동의 하에 약속을 정했다고 하지만 결국 내용은 엄마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런 벌을 받을 거라는 행동코칭을 한 것이다. 어른이 끈질기게 설득하면 아이는 알겠다며 물러나기가 쉽다. 좋은 말을 썼고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설득을 했기 때문에 엄마 생각에는 감쪽같이 감정코칭을 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런데 다음에 아이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약속은 아마도 엄마가 밀어붙이고 아이가 마지못해 동의한 약속일 것이다. 아이는 그저 잔소리를 그만 듣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여줬을 뿐이다. 정말이지 이런 경우는 너무 많이 생긴다. 감정코칭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이다.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주다 보면 아이는 자기 욕구를 숨기지 않고 다 보여준다. 그 모습이 엄마 보기에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떼를 쓰는 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엄마 생각에 정말 이런 아이 말을 다 들어줘야 하나, 가르칠 건 가르쳐야겠다 싶어 좀 강하게 내 생각을 밀어붙일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주지 못하게 된다. 너무 받아주면 아이 버릇이 나빠질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받아주면 아이를 억압하는 모양새가 되니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연습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감정코칭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이쪽으로 넘어지고 저쪽으로 넘어지며 절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엄마가 능숙해지는 사이에 아이도 성장하기 때문에 어느 새 아이와 제법 말이 통한다는 기분이 든다. 이만하면 너무 사사건건 잔소리하기 보다는 아이를 믿고 지켜봐줘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생기는 날도 온다.
나도 처음에 감정코칭을 배울 때는 감정코칭을 통해 말 잘 듣는 아이를 만드는 게 내 목표였다. 어느 영상에서 보니까 감정코칭을 받은 아이는 엄청 착하고 말썽도 안 부리길래 나도 내 아이를 엄마 속 한번도 안 썩이고 절대로 동생하고 싸우지도 않는 착한 아이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감정코칭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감정코칭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런 삶은 없다는 것이다. 비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언제나 맑은 날만 지속되는 그런 삶은 없다. 하지만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바람이 불면 겉옷을 하나 더 입을 수는 있다. 감정코칭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우산이나 겉옷 같은 도구가 되어 준다.
감정코칭을 한다고 아이들이 절대로 안 싸우고 항상 엄마 말 잘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싸우고 나서도 엄마하고 오늘은 천둥이 쳤네, 번개가 번쩍 했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될 수는 있다. 엄마는 충분히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서는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램을 덧붙여줄 수 있다. 그렇게 엄마한테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아이한테 엄마의 바램을 가볍게 전달할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가 감정코칭의 열매이다. 아무런 고민이 없는 삶이 목표가 아니라 충분히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삶이 감정코칭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 집도 형제가 많이 싸운다. 작은 아이가 심심하면 형한테 자꾸 장난을 걸기 때문이다. 두 아이한테 갈등 관리의 기술에 대해 많이 가르쳐줬다. 심심하면 그냥 ‘심심하니까 같이 놀자’하고 마음을 전달하면 되는 거지, 장난을 거는 것으로 내 마음을 풀지 말라고 가르쳐줬다. 그리고 동생이 시비를 걸어올 때에도 그냥 그 순간 내 화나는 마음과 바램을 전달하면 되는 거지 꼭 때리거나 화를 낼 필요는 없다고도 가르쳐줬다. 심심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마음에는 옳고 그른 게 없지만 때리거나 시비를 거는 행동에는 옳고 그른 게 있다. 마음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행동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설명해 주었다.
큰 아이가 말한다. 자기는 백 번도 넘게 동생한테 자기 마음을 얘기해봤다는 것이다. 백 번도 넘게 얘기를 했는데도 동생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생은 좋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화를 내야만 조금 얌전해지기 때문에 자기는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딱 그런 심정이었다. 나도 아이들한테 화가 난다고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백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그런데도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이제는 나도 둘 다 야단을 치고 벌을 주어야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말해줬다. 엄마도 ‘네가 얼만큼 답답한지 너무나 이해가 돼. 수백 번 얘기했는데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기 마련이야. 그럴 때는 물리적인 힘을 행사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기분이 들곤 하지.’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동생을 불러서 흠씬 때려줄까?’ 아이가 허탈하게 씩 웃는다. 마음의 속성이 이렇다. 마음은 알아차리고 표현해주면 진정이 된다. 진정이 되고 나면 절대로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방식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마음이 풀어진다. 그렇게 마음이 풀어져야만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매번 때려줄 수는 없잖아. 동생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아주 옛날보다는 좀 좋아지지 않았어? 더 어렸을 때는 무조건 우기기만 했는데 지금은 가끔 들을 때도 있잖아. 엄마가 한 번 더 얘기해볼게. 동생도 언젠가는 형 마음을 이해해주는 좋은 동생이 될 거야..’ 큰 아이는 알았다고 하고 갔다. 다음은 작은 아이 차례다.
나도 가끔은 조급증이 난다. 아이들이 한 번만 가르쳐줘도 금방 배우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좋게 달래기만 해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는 패배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감정코칭은 아이나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조벽 교수님 말씀을 떠올린다. 감정코칭의 목표는 나와 내 아이의 성장과 성숙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 성질이 급한 데가 있으니까 큰 애도 동생을 참고 기다려주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걸 거다. 내가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가르쳐주면 아이들도 자기 속도대로 잘 배워 나갈 거라고 믿는다. 큰 아이한테 동생을 조금만 더 이해해주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면서 나도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생명의 성장과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나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당연한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