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있는 동안 감정코칭을 가르쳐주신 강사님들과 연락이 닿아 hd행복연구소에 방문하게 되었다. 약속할 때는 혼자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맡길 곳이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사님, 교수님 만나려니 갑자기 긴장되고 부담된다. 우리 아이들이 가서 말썽부리고 싸우기라도 하면 감정코칭 전문가 자격증을 돌려달라고 할 것만 같다. 가는 동안 아이들한테 엄마의 선생님들을 뵈러 가는 자리이니 점잖고 바람직하게 잘 행동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순한 기질의 큰 아이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벌써 긴장하고 얌전해진다. 전형적인 체제거부형 작은 아이는 '싫은데~ 내가 왜~ 얼마줄건데~'하면서 장난만 치려고 든다. 둘 다 내가 낳았지만 참 많이 다르다. 사람은 서로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기질은 성격하고는 좀 다른 개념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기질은 아이가 원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고 노력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보이는 기질을 가지고 나무라면 안된다. 감정도 꾸짖으면 안되는데 기질은 감정보다도 더 아이의 본래 모습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질을 두고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마치 흑인보고 얼굴이 검다고 야단을 치거나 여성이라고 구박을 하면 안되는 것처럼 타고난 기질은 있는 그대로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기질을 분석하고 분류한 많은 연구들이 있다. 우선 토머스와 체스라는 학자가 1977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이렇다. 아이들이 타고나는 기질은 순둥이형이 40%, 체제거부형이 10%, 대기만성형이 15% 정도 된다. 나머지는 이 세가지 기질이 조금씩 혼합되어 나타난다. 이런 기질은 문화나 지역, 인종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또, 아이젠크와 제롬 케이건라는 학자는 기질을 감각과 연관시켰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좀더 감각이 예민한 고반응적 기질의 아이가 있고 상대적으로 감각 자극에 대한 반응이 낮은 저반응적 기질의 아이가 있다는 거다. 이런 감각 자극에 대한 반응도는 아주 어린 신생아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는 타고 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최근에는 기질과 뇌과학을 연계하여 좌우뇌의 활성화와 기질의 상관관계를 발표하기도 하고 뇌의 물리적인 모양 이 기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어쨌든 사람마다 아이마다 기질은 타고 나는 것이고 이것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게 기질에 관한 연구들의 결론이다.
우리 아이들을 토머스와 체리의 기질 분류방식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큰아이는 순둥이형과 대기만성형이 반반 섞여있는 아이인 것 같다. 언제나 한 박자 느리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로서 조바심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배운 대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느린 형이 아니고 대기만성형이라고. 소심한 게 아니라 신중한 거라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게 아니고 남을 배려하는 착한 심성의 아이라고 자꾸 장점을 봐 주려고 노력한다. 규칙을 준수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큰 아이는 정말 장점도 많다. 이 모든 장점을 그대로 가지면서 융통성도 있고 자기 유리한 것도 잘 찾는 영리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이다.
한 박자 느린형은
대기만성형이니 기다려주자
순둥이형은 어른 말을 잘 따르기 때문에 엄마 생각에는 아무 문제없는 아이 같지만 그럴수록 아이에게 자신의 기분을 많이 물어봐 주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누가 물어봐 주지 않으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대해 모르고 살아갈 수 있다. 남에게 맞추면 크게 문제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자기 감정은 모르면서 항상 남에게만 맞춰서 살아가다 보면 살면서 문득 공허해지고 생기가 없어진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가장 행복하다. 큰 아이는 순둥이형이면서 대기만성형이니 여유를 많이 가지고 기다려주면서 아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주 물어봐주고 격려를 많이 해 주면서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순둥이형은
착하게 굴수록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많이 물어봐주자
반면 작은 아이는 200% 체제거부형이다. 다른 이유가 전혀 없이 순수하게 재미로 엄마 말을 안 듣는 아이라 정말 괴롭다. 어릴 때 옷을 입히려면 무작정 숨바꼭질부터 했어야 했다. 일단 도망가고 엄마 애를 태워야 살 맛이 난다. 뭘 하자고 하면 일부러 반대로 하는 아이다 보니 정말 엄마로서 궁극의 인내심을 연마해야 했다. 협박도 안 통하고 회유도 안 통하는 쉽지 않은 우리 막내. 감정코칭에서는 이런 아이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찾으라고 한다. 진화론적으로 모두가 한 길로 갈 때 다른 모험을 하는 10% 정도의 청개구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만일 다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전멸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왜 하필 이런 혁명가가 우리집에 태어났나 억울하지만 기질은 유전도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넌 어디서 왔니, 왜 이러니 하는 질문도 그만해야겠다.(이건 비난이니까) 그냥 인류의 희망을 키우게 된 일에 감사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체재거부형은
무조건 야단치기보다는
좋은 면을 바라봐주고
부드럽게 가르쳐주자
이 이야기를 듣고 와서 우리 남편한테 해줬다. 말 안듣고 못말리는 개구쟁이지만 기발하고 창의성도 뛰어난 우리 둘째 같은 아이가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우리집은 어떻게 구원받아야 되는지 좀 알아보라고 그런다. 우리집은 내가 마음의 용량을 키우며 알아서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아이가 하는 순수한 장난들을 너무 나무라지만 말고 이쁘게 봐주는 여유를 가지면서 그렇지만 더 바람직한 행동도 있다고 부드럽게 알려주어야 한다. 체재거부형 아이를 키우려면 순둥이형 아이 10명 키우는 것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끔 엄마가 지쳐 아이를 나무라게 되는 적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체재거부형들은 야단을 맞을수록 비뚤어진다. 체재거부형이기 때문에. 구박하지 말고, 나무라지 말고, 사랑으로 감정코칭 해 주어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교수님 만나 뵙는 자리에서 얌전하게 잘 행동해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이가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엄마, 나 아까 사진 찍을 때 있잖아.. 하트 만들라고 해서 일부러 하트 쪼개버렸다.' 사진을 다시 보니 큰 아이는 표정은 영 안 좋지만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보란듯이 하트를 쪼개 놓고 있었다.
'그래. 아들… 기질은 변하지 않는 거라는데 낯선 어른들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너도 네 기질을 숨기느라 많이 애썼다. 답답했겠구나. 행복연구소간 김에 너를 좀 연구해보라고 기증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네가 오늘 유난히 멀쩡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엄마가 깜박했네. 너는 오늘 뵙고 온 교수님께 진짜 감사해야돼… 엄마가 감정코칭을 안 배웠으면 너는 무지 혼나면서 컸을 거야. 네가 유난히 매를 부르는 타입이거든.'
어른이 하는 말은 썩 내키지 않아도 시키는대로 하는 순둥이 큰 아이나 어른이 하는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꼭 그 말을 안 지켜야 살 맛이 나는 작은 아이나 둘 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야겠다. 순둥이는 어른 보기에 이쁘지만 위험한 면이 있고 청개구리는 어른 보기에 힘이 들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느린 아이는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 순둥이는 순해서 어디가서 치일까봐 걱정, 조금 늦되는 형은 느려 터져서 세상에 낙오될까 걱정, 체재거부형은 저러다가 남들한테 미움받아 외톨이가 될까 걱정, 모든 걸 다 걱정스럽게 보는 건 엄마의 병일 뿐이다.
실제로는 순둥이는 순해서 아마 어딜가나 사랑받을 거다. 조금 늦되는 아이는 기다려주면 대기만성으로 결국 크고 멋진 나무가 될거다. 체재거부형은 조금 좌충우돌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끌어나갈거다. 믿자, 믿자, 믿자.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 오늘도 아이를 너무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용량을 키워보는 쪽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정말 잘 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