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연결되는 순간

아이의 오해

by 제비

감정코칭의 명제는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수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감정을 수용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감정은 마음으로 느낄 뿐이다.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 주려면 우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엄마가 알아야 하는데 아이는 아직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 모른다. 본인도 잘 모르는 아이의 감정을 엄마가 알아준다는 게 참 어렵다. 아이의 눈빛, 목소리, 말투, 표정,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작은 단서들을 통해서 감정을 포착해야 하고 엄마의 경험과 직관을 총동원해서 아이의 마음을 짐작한 후 같은 감정을 느껴보려는 진심 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엄마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편안해야 아이의 마음을 가만히 짐작해 보는 여유가 주어진다.


‖평정심을 잃은 아이‖


하루는 큰 아이가 아침에 눈을 비비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동생이 발로 차서 편하게 자지 못했다고 불평하면서 내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다시 잠들어버렸다. 나는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다가 등교시킬 시간이 돼서 아이들을 깨웠다.


내 침대에 잠이 든 큰 아이를 부르면서 동시에 작은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아이는 침대를 다 차지하고 대각선으로 누워서 이불도 둘둘 말아놓은 채 엉망으로 자고 있었다. 나는 이 녀석 잠을 잠자면서도 어지간히 설친다 싶어서 약간은 타박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구쟁이 녀석 자는 모습도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깨우며 말했다.


“아들, 일어나. 너 자는 모습 좀 봐라. 이렇게 가로로 누워서 자면 어떡해. 형아가 너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엄마 방으로 오더라. 에구 녀석, 이제 일어나야지.”


작은 아이가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면서 엉엉 울다가 뛰쳐나가서 거실에 앉아 있는 형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나는 놀래서 "미안, 미안해. 야단치는 걸로 들렸어? 엄마는 그냥 너 자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런 건데… 아무리 그래도 형을 발로 차면 어떡해!" 하면서 아이를 형한테서 떼어냈다. 갑자기 발길질당한 큰 아이도 어리둥절하며 잔뜩 약이 오른 표정이다. 작은 아이는 아무리 해도 달래 지지 않고 계속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다. 이쯤 되니까 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억울한 마음도 들고 괘씸하고 속이 상했다. 이렇게 내 감정이 상해버리면 절대로 감정코칭을 할 수가 없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일단 우는 아이를 혼자 두고 거실로 나왔다.


‖심장호흡으로 내 마음을 가라앉히다‖


이런 순간에 심장호흡을 알고 있으면 큰 힘이 된다. 심장호흡이란 의식적으로 심장으로 호흡한다고 상상하면서 천천히 고르게 호흡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 장기 중에 유일하게 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기는 허파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혈액순환도, 위 운동도, 간 기능도 내 의식으로 조절할 수 없지만 호흡은 조절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 휘몰아칠 때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작은 시도는 생각보다 위력이 크다. 기분이 나쁜 대로 내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지를 판단해 보는 것이다.


나는 심장호흡을 하면서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금 일어난 일을 돌아보았다. 발버둥 치는 아이의 행동과 엄마도 형도 밉다고 소리 지르는 목소리, 분노에 휩싸인 채 쏟고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아이의 지금 심정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불쾌감, 미움, 슬픔과 같은 감정인 것 같았다.


아이가 맨 처음 폭발했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내가 너무 놀리듯이 얘기한 게 문제였을까? 야단치는 걸로 들렸나?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거지?'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문득 '아.. 작은 아이는 지금 형이 밤새도록 엄마하고 같이 자고 자기 혼자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두고 경쟁하는 두 아이 상황에서는 이건 꼭 아내가 남편이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것만큼의 충격일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의 난폭한 행동도, 무례한 언사도, 나와 형한테 보인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으로 무너진 아이의 마음이 모두 다 이해가 되었다.


“아.. 우리 아들.. 형이 엄마하고 밤새 같이 잔 줄 알고 이만큼 화가 났구나. 그건 누구라도 화가 날만한 일이야. 엄마라도 못 참았을 거야. 우리 아들 정말 슬펐겠다. 세상에.. 그런데 엄마하고 형하고 같이 잔 거 아니야. 형은 아침이 돼서 엄마 방으로 온 거야. 엄마는 일어나서 아침 준비 했어. 네가 눈 떴을 때 엄마 방에서 자고 있는 형을 보고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정말 충격이었겠다. 그렇지만 네 오해야. 엄마하고 형이 어떻게 너만 혼자 자게 놔둘 수 있겠니?”


‖아이의 오해 풀어주기‖


사람은 누군가 자기의 진짜 마음을 알아주면 감정이 가라앉기 마련이다. 조금 차분해졌지만 아직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아이를 안고 아이가 잘못 이해한 부분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하고 어쨌든 기분 나쁘게 만든 부분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풀릴지 물어보니까 앞으로 형은 안아주지 말고 자기만 안아달라고 요구하였다. 내가 놀래서 '평생?' 이라고 되 물으니 아이가 씩 웃으며 '어!'라고 하길래 그건 안된다고 그랬다. 감정은 알아주되 행동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늘 하루 동안은 작은 아이만 안아주고 큰 아이는 안아주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큰 아이한테 상황을 설명하였다. 다행히 큰 아이가 허락을 해주어 그날 하루는 큰 아이한테 찡긋거리며 눈빛 교환만 겨우 하고 작은 아이만 안아주며 작은 아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다음날 먼저 일어난 큰 아이를 덥석 안아주면서 "우리 아들 정말 형아다. 심통쟁이 동생 녀석 때문에 우리 큰 아들 어제 하루 종일 안아보지도 못했네."하면서 뽀뽀해 주었더니 큰 아이가 의젓하게 씩 웃는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이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실제로 자연의 세계에서는 어미가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더 작고 약한 새끼를 포기하고 나머지 새끼들에 집중해서 전체의 생존율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엄마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형제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목숨을 걸고 엄마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다. 어제 작은 아이가 보인 비이성적인 행동은 배반을 경험한 사람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작은 아이가 많이 이해가 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큰 아이의 넓은 마음에 깊이 감동하였다. 엄마의 사랑을 양보한다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 정말 큰 마음이다. 아이가 정말 많이 큰 것이다. 자기 속도대로, 자기 몫만큼 열심히 성장해 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이런 아이들에게 경쟁적으로 사랑을 받는다니 정말 행복하다.


‖행동 속에 담긴 진짜 감정을 보기‖


눈에 보이는 행동만 가지고 야단치고 서로 화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짜 감정을 서로 알아주고 감정의 세계에서 함께 만나는 순간은 정말 따뜻하고 경이롭다. 모든 게 용서되고 모든 게 이해된다.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 아이들은 살면서도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속지 않고 언제나 그 안에 있는 선한 진심을 보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아마 세상 그 어떤 재물보다 더 큰 유산일 될 것이다. 이 순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 아이들과 감정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하고 현명한 엄마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만 아이들과 잘 연결되서 좋은 마음 깨달아가며 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