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와 간섭 사이
넷플릭스의 영상 가운데 <블랙 미어>라는 영국 TV프로그램이 있다. 인간의 어두운 본능과 첨단 과학 기술이 만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서 만든 SF시리즈물인데 오싹하면서도 생각해 볼거리가 많은 내용들이다.
그중에 시즌 4에 있는 두 번째 영상 <아크 엔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찾아보니 아크 엔젤(Ark angel)의 'Ark'는 '신성한 것을 모독하다'라는 의미가 있었다. 아마 어둠을 의미하는 'Dark'와 발음이 비슷하니 중의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내용은 이렇다.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 '마리'가 주인공이다. 마리는 혼자서 딸을 키우는 만큼 아이의 안전에 대해 과도할 만큼 집착하는 엄마로 나온다. 마리의 딸이 어릴 때 고양이를 따라가는 바람에 아이를 잃어버릴 뻔하고 겁에 질린 마리는 아이의 두뇌에 아크엔젤이라는 칩을 심어 놓는다. 아크엔젤은 첨단 과학으로 만든 디바이스로 태블릿을 통해 아이의 건강 상태와 위치, 아이가 보는 장면까지 엄마가 지켜볼 수가 있다. 옵션을 선택하면 아이한테 너무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흐리게 처리하거나 욕설이나 나쁜 말을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도 있을 정도로 엄마 입장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아이를 보호하는 장치이다.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불안을 생각해 보면 공감되는 내용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기술이 발전한 요즘 그러한 발전 때문에 오히려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세상에 너무 나쁜 정보도 많고 불안하게 만드는 사건들도 많이 일어난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더 불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무서워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걱정되어서 아이의 모든 순간을 엄마가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가 있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아이를 잘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엄마의 이런 편집증적인 걱정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을 통제하고 싶다는 엄마 마음에는 사랑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 딸 세라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또래와의 소통에 점점 문제가 생긴다. 또래 아이들이 보고 듣는 내용 중에 일부가 필터링된 채로 보이고 들리기 때문에 아이는 클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친구들한테도 괴짜처럼 보이게 된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린다는 건 인간관계에 있어서 분명 소통의 장애가 된다.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자해까지 하게 되자 엄마는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그만둔다. 필터링하는 옵션을 끄고 아크엔젤을 창고 깊숙이 넣어버린다.
이 세상에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두운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것은 좋은 것, 이것은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다 해줄 수는 없다. 아이가 스스로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 것이고 무엇이 나에게 해로운 것인지 판단할 수 있으려면 아이에게 선악이 공존하는 이 세상을 스스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허용을 해줘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정말 동의하는 내용이지만 막상 내 아이의 문제가 되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세라가 엄마의 통제권을 벗어난 뒤 친구를 통해 자극적인 영상들을 처음 접하는 장면은 부모의 눈으로 너무 불편하고 위험해 보인다.
세라는 엄마의 통제권을 벗어난 뒤 평범한 청소년으로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화면 속의 세라는 또래 아이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옷차림도 십 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모습으로 성장했다. 세라는 이제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러워졌고 엄마와의 관계도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세라한테 남자친구가 생기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고 외출하는 일이 생기자 모든 것이 다시 위태로워졌다. 엄마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아크엔젤을 꺼내 세라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엄마가 보기에 세라의 남자친구는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세라의 남자친구가 아르바이트로 마약을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고 세라 역시 호기심에 남자친구를 따라 마약을 경험하는 걸 목격한 엄마는 결국 세라의 남자친구를 찾아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하고 세라에게서 떨어지라고 윽박지른다.
이유도 모른 채 남자친구에게서 결별을 선고받은 세라는 미친 듯이 슬퍼하다가 엄마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폭발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세라는 엄마를 때리고 아크엔젤을 부수고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결말이기도 하다. 부모가 아이를 과도하게 통제하려 드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아이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은 아이와 부모 사이가 멀어지는 아주 보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탕이나 주스 같은 단 음식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비교적 좋지 않은 음식하고 전쟁을 덜 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감사하며 지내왔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춘기가 되어서인지 갈수록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서 걱정이 된다. 그중에서도 한 번씩 콜라를 마신다는 게 맘에 안 들어서 남편한테 불평을 했다. ‘콜라 한 잔 마시는 것도 맘에 안 드는데 나중에 술. 담배 한다고 하면 얼마나 싫을까?’ 사실 술. 담배 하는 남편한테 에둘러 하는 핀잔이기도 했다. 그러자 남편도 지지 않고 한 마디 한다. ‘애가 네 거냐?’
남편 말대로 아이는 내가 낳았지만 내 소유물은 아니다. 아이한테도 자신만의 사생활이 생길 것이고 그 공간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 자기가 사귀고 싶은 친구,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이 다 있을 거다.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바람직한 판단과 선택을 해주면 좋겠다. 특별한 방법은 없을 것 같고 그냥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모가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코로나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래도 지금 내 상황과 잘 맞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를 보게 되어 감사하다. 아이도 야외활동이 자꾸 제한이 되는 상황이지만 나름대로 처한 환경 안에서 자신에게 좋은 기회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 기술 발전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닐거다.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잘 판단해서 현대의 기술 발전들을 선하고 유익하게 잘 사용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