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비 May 13. 2024

아이보다 더 중요한 것?

엄마는 나보다 OOO를 더 사랑해

아이를 키울 때 부모들이 부딪히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줘야 하는 문제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예의가 바르고 친구들에게 양보 잘하는 인성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그런 배려, 예의, 양보와 같은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좋은 가치를 너무 강조하다가 자칫 아이의 마음을 보지 못하면 아이 입에서 '엄마는 나보다 내 친구를 더 사랑해' 혹은 '엄마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해'라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욕심을 부리는 대로, 이기적으로 구는 대로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해를 끼칠 때 엄마들은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상대 아이에게 미안한 것도 문제지만 그 아이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한테 내 아이가 밉보일세라 내 아이가 나쁜 아이로 자랄세라, 남이 내 아이를 미워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 아이를 따끔하게 야단쳐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목청껏 아이를 꾸짖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하면서도 좋은 인성을 갖춘 올바른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내 마음처럼 안 되는 내 아이


사실 요즘 친한 동생네 아이를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점점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십 대이다. 이제는 각자의 세상을 어느 정도 존중해 주고 혼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약간의 거리를 두고 기다려주면서 아이가 찾을 때 딱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는 현명한 엄마가 되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아이들하고 붙어 있으면 자꾸 잔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적당히 떨어져서 옆집에 더 어린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동생을 도와주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인 것 같다. 그 동생은 유치원생 아이를 열심히 먹이고 재우면서 내가 이미 벌써 해봤던 고민들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언니는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육아를 다 했어요?" 


나도 아이가 저만할 때 딱 그런 심정으로 육아 선배 맘들을 우러러봤었다. 그리고 그맘때 그런 고민들을 해결해 보고자 감정코칭을 배웠었다.


그 동생네 아이는 잘 먹고 잘 자는 아주 건강한 4세 남자아이다. 몸이 날쌔고 에너지가 넘쳐서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잡을 만큼 빠르다. 이제 유치원에 막 등원하게 되어 인생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참인데 아직까지 간식을 나누어 먹는다거나 장난감을 빌려주는 등 성숙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동생은 마음이 조급하다.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못 놀까 봐, 다른 친구들 속상하게 만들까 봐 걱정이 많다. 아직 4살밖에 안된 아이한테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성숙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라. 친구한테 양보해라. 이기적으로 굴지 말아라. 어쩌다 친구를 때리거나 꼬집기라도 한 날에는 발끈해서 아이를 세워놓고 무섭게 다그친다. 


선배 맘의 눈으로 봤을 때 그런 방식으로는 아이에게 바른 인성을 가르쳐 주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아직 말의 내용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다. 아이는 그냥 무서운 엄마의 눈빛, 날카로운 목소리, 화난 감정만 몸으로 느낄 뿐이다. 잘못하면 아이에게 혹시 ‘엄마한테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한가 보다’라는 의심이 들어갈 수 있다. 아니면 ‘지금은 억울하지만 참고 나도 나보다 약한 사람한테는 화내고 소리 질러야겠다’라는 태도를 배울 수도 있다. 엄마의 의도와는 한참 멀어진 내용이다. 


‖자꾸 친구를 때리는 아이


“그럼 어떻게 해요? 아이가 다른 친구를 때리는 걸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맞다.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대로 두면 안 된다. 하지만 아이 마음을 보지 않고 무조건 올바른 행동만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아이에게 좋은 마음을 가르쳐줄 수 없다. 아이가 왜 다른 아이를 때렸는지, 왜 다른 아이를 꼬집었는지 그 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 


“OO야, 친구가 내 장난감 가지고 노니까 속상하지?” 


“응… 마음이 아파” 


정말 표현력이 뛰어난 아이다. 


“맞아. 마음이 아프지. 이모라도 누가 이모 물건 허락 없이 만지면 기분이 정말 나쁠 거야.” 


아이는 그대로 친구 손에 있는 장난감을 빼앗으면서 친구를 때리려고 한다. 내가 아이를 안아 올리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화가 난다고 친구를 때리면 안 돼” 


눈빛이나 표정, 어조가 중요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무섭게 말하면 소용이 없다. 말은 의사소통의 효과에 겨우 7%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말투나 표정 같은 비구어적인 의사소통이 나머지 93%를 차지한다. 아이는 한 번에 배우지 못한다. 굉장히 여러 번,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여러 번 반복해서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가 ‘엄마’라는 한 마디를 내뱉기 전에 '엄마'라는 말을 3천 번 정도 듣는다고 한다. 부드러운 눈빛, 너그러운 태도, 배려하는 마음씨를 3천 번 정도 겪어야 아이도 친구한테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내가 인격자가 돼야 하는 거네요” 


동생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냥 말로 되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아이는 어른의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어른의 모습을 보며 자란다. 나도 정말 내가 말하는 것만큼만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이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을 때


“아이가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도 다른 아이를 때려요. 나도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봤는데 이유를 말 안 해요” 


글쎄… 이런 경우는 왜 그럴까? 아직 의사소통 능력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다 헤아린다는 건 참 어렵다. 아마 무언가 이유는 있겠지만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아이가 이유 없이 자꾸 말썽을 부린다면 아이의 평상시 스트레스 수준을 떨어뜨려줘야 한다. 아이가 스트레스받을 무언가가 있었는지 같이 생각해 봤다. 


동생 말로는 자기가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자기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 것 같다고 한다. 내 집에서 아이하고 둘이 있을 때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이 해주고 많이 안아주고 이뻐해 주지만 밖에 나가서는 남의 평가나 시선을 의식해서 아이에게 더 엄격하고 무섭게 다그치는 적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빨리 말을 듣게 하려다 보니 망태 할아버지나 도깨비와 같이 아이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도 너무 많이 동원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만한 요소는 너무도 많다. 엄마 아빠가 다투는 것도, 엄마가 그저 혼자 기분이 울적한 것도, 망태 할아버지나 도깨비도 아이에게는 모두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의 모든 스트레스 요인을 다 없애주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엄마가 아무리 잘해보려고 해도 아이를 협박하게 되는 날도 있고, 비교하게 되는 날도 있고, 결국은 남의 눈을 의식에서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날도 있고, 내 체면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하는 날도 있을 수 밖에 없다. 


비율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일상에서 내가 아이를 가르치기위해 야단치고 혼내는 시간에 비해 아이와 긍정적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많으면 된다. 평소에 저금한다는 기분으로 아이에게 호감, 존중, 감사, 배려를 실천해보자. 아이가 등교하거나 하교할 때 다정하게 인사해주고,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오늘 하루에 대해 물어봐 주고, 아이가 말을 걸어 올 때 성심껏 응답해주고, 아이가 어려워하는 일을 조금씩 거들어주고, 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아이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등 아이와 긍정적인 연결을 평상시에 많이 쌓아두는 것이다.


다른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넘어지는 날도 있고 부딪히는 날도 있지만 엄마니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육아란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여러 사람 말을 좀 참고해 보고 책도 읽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들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짓 감정에도 공감이 필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