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코칭을 하면 안 될 때
감정코칭을 배우고 연습하다 보면 공감의 위력에 대해 새삼 많이 느낀다.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나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감정을 느꼈겠다고 공감해 주면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상대방만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함께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잠깐이라도 한 편이 된 것 같은 연대감은 사람을 충만하게 해 주고 서로에게 감동이 된다. 그런 안전감, 안정감, 편안함, 자신감, 충만함, 따뜻함과 같은 감정을 기반으로 좀 더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감정코칭의 핵심이다.
그런데 가끔 아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감정을 보일 때도 있다. 혹은 거짓까지는 아니라도 엄마가 달래주는 것에 취해 자기감정을 마구 증폭시켜 과장된 감정을 보일 때도 있다. 한마디로 떼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부모는 감정코칭의 한계를 느낀다. 너무 오냐오냐 해주다가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지, 지금은 따끔하게 야단을 쳐줘야 하는 순간인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진다.
교과서에는 만약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보이는 감정이 확실히 거짓 감정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감정코칭을 해서는 안된다고 나온다. “엄마가 보기에는 네가 진짜로 슬픈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라고 차분히 말하던가 아니면 “엄마가 보기에는 네가 그만큼 화난 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넌지시 말해보라는 것이다.
엄마가 보기에
네가 진짜로 슬픈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아이의 인격은 꾸짖지 않으면서 엄마의 진정성을 보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만큼 했으면 엄마가 많이 들어줬잖아. 적당히 좀 해라."라고 하면 엄마가 감정조절을 실패한 거다. “너 지금 엄살 부리는 거지?” 이렇게 나오면 아이와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고 다 믿지도 않으면서 “그래, 그래, 많이 슬프겠다.” 이렇게 받아주기만 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고 가식이 된다. 아이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엄마가 엄마의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정교한 스킬이다. 감정코칭은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 이만큼 했으면 엄마가 많이 들어줬잖니! 적당히 좀 해라!! --> 엄마의 감정조절 실패
✔ 너 지금 그렇게 슬프지도 않으면서 엄살 부리는 거지? 다 보여. --> 아이와의 신뢰가 무너짐
✔ (공감이 안되면서) 그래, 그래, 많이 슬프겠다. --> 진정성이 떨어짐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이 거짓 감정인지 진짜 감정인지 판단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아이가 가짜 감정을 보이는데 진짜인 줄 알고 다 들어주는 것도 위험하고 아이가 진짜 감정을 보이는데 가짜인 줄 알고 안 믿어주는 것도 위험하다. 이쪽으로 떨어져도 낭떠러지, 저쪽으로 떨어 저도 낭떠러지인 절벽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이다. 이럴 때 최성애 박사님은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살펴보라고 하신다. ‘그게 정말 네 마음이야?’하고 묻고 기다려 보라고 조언한다.
그게 정말 네 마음이야?
예를 들어, 아이가 동생을 때리고 기분을 물어봤을 때 ‘좋았어’라고 대답할 수가 있다. 그럴 때 엄마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한 목소리로 ‘정말 그랬어?’하고 기다려보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렵다. 사실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면 엄마 마음속에 ‘어떻게 동생을 때리고 기분이 좋을 수 있어? 나쁜 녀석..’이라는 판단이 서거나 ‘이 녀석이 엄마 앞에서 자존심 세우느라 거짓 감정을 말하는구나. 괘씸한데?’라는 마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이야?’라고 묻는 엄마 말과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아이에 대한 판단과 힐난하는 어조가 섞인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정말이야.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니까!’하고 우기고 떼를 쓰게 되면서 결국은 엄마로서도 아이의 감정 자체를 꾸짖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감정코칭이 실패했던 나의 사례이다.
아니면 이럴 수도 있다. 아이가 장난감이 망가졌다고 혹은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슬퍼할 때 엄마가 아이의 감정을 잘 들어주다 보면 아이가 자기감정을 증폭시켜서 진짜 슬픈 감정보다 훨씬 더 오버해서 자기감정에 빠져버리는 경우다. 감정코칭이 역효과가 나는 순간이다. 그럴 때는 무조건 "많이 슬프구나.”할게 아니라 “엄마가 보기에 네가 정말 그만큼 슬픈 건지 잘 모르겠어.”라고 차분히 얘기해 주는 게 아이로 하여금 진짜 자기 마음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도 참 어렵다. 잘못하다가는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아이가 엄마를 오해할 수 있다.
엄마의 진심을 전달하면서도 아이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한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 오랜 신뢰의 역사가 필요하다. 오늘 이 순간에는 서로 어긋날 수 있어도 다시 만나고 연결되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진짜 깊이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것은 단지 부모 자녀의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같다. 평소에 일상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작은 호감과 존중의 표현을 많이 해주는 게 정말 도움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보이는 감정이 진짜일까, 거짓일까? 지금 나는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공감을 해 줄 상황인가, 아니면 잠시 멈춰서 아이로 하여금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상황인가? 이것에 대한 정답은 없다. 무수히 많은 시도를 통해 많이 실패하면서 감을 익혀 나가는 수밖에 없다. 마치 농구선수가 골연습을 하듯이 공이 들어가도 또 던지고 공이 안 들어가도 또 던지면서 연습하는 것이다. 성공했을 때 무엇 때문에 들어갔을까 생각해 보고, 실패했을 때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되돌아보면서 자기 피드백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글로 내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말이지 눈에 잘 안 보일 정도로 조금씩 느는 것이 감정코칭인 것 같다.
사실 요즘 내가 너무 공감해 주는 데 집중하느라 아이에게 명확한 지침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면서 낙담에 빠져 있다. 내가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니까 아이는 기분이 좋고 그러다 보니 자꾸 자기 마음을 키우기만 했지 자기를 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부족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데에는 게으르고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합리화만 실컷 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된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 끊어줬어야 했나, 어떻게 표현하면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올바른 행동을 잘하게끔 이끌어줄 수 있었을까? 아직도 정답은 못 찾았다. 다음에는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또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실패했다고 낙담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게 아니라 다시 해봐야지 하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 회복탄력성까지 배워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언젠간 아이도 잘 배워나가겠지, 결국은 잘 클 거야 하는 믿음이 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아직도 정말 무엇이 아이를 위해 가장 현명한 태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도하면서 길을 찾아본다. 내일은 꼭 오늘보다는 더 나아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