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허용하기

정말 나쁜 감정은 없을까?

by 제비

‖부정적인 감정도 나쁜 게 아니다?‖


감정코칭을 처음 배울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게 없다. 좋고 나쁜 것도 없다.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하기 때문에 감정은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감정에 옳고 그른 게 없다는 말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좋고 나쁜 게 없다는 말은 여전히 어려웠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은 어쨌든 좋은 감정이고 불행하고 슬픈 감정은 어쨌든 나쁜 감정이 아닐까? 아무리 모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싫고 내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건 정말 엄마로서 너무나 싫은 일이다. 내 아이에게는 어쨌든 항상 웃을 일만 있었으면 좋겠고 매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거나 아이에게 실패나 실수도 허락하라는 말은 그냥 육아서에 나오는 듣기 좋은 말일뿐이다. 감정코칭도 결국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아이를 잘 어르고 달래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꿔주는 기술로 익혀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감정코칭에서는 늘 부정적인 감정도 수용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감정코칭을 배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 감정코칭 연수는 이론 수업만 있지 않고 실습하는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론 공부는 상대적으로 할 만한 부분이다. 안전한 곳에 앉아서 글자로 된 이론을 머리로 익히고 필기시험을 보는 건 그래도 쉽다. 그런데 역할극으로 이루어진 실습 시간은 너무 어려웠다. 실습 시간은 늘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었고, 하기 싫었다. 역할극은 어색하고, 긴장되고, 부담스러웠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를 이렇게 키우면 된다는 말은 쉬운데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다. 인생도 그렇다. 이렇게 살면 된다는 말을 배우는 건 쉬운데 실제로 그렇게 살아 내는 건 어렵다.


‖정말 실패해도 좋은 걸까?‖


그래도 감정코칭을 계속 연습하면서 느끼는 건 사실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진짜 배우는 바가 더 많다는 점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어려운 일에 도전할 때 떨리고 무섭다. 긴장되고 스트레스받는다. 내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실망스럽고 창피하고 괴롭고 우울하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상처받고 다시 도전할 때 정말 큰 도약이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안전하지만 배우는 게 없다. 어떤 순간 잠시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은 있지만 진짜 나쁜 감정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감정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메시지가 있고 교훈이 있다.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 아이가 한 번도 실수하지 않기를,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일반적인 마음이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그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어릴 때 실패나 실수는 사소했고, 또 내가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는 정도였지만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갈수록 뭔가 잘못되면 더 안 될 것 같고 미래를 위해 뭐든 단단히 잘 대비해 줬으면 좋겠고, 괜한 시간 낭비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기대가 더 커진다. 하지만 내 기대를 높일수록 아이하고는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청소년기는 사실 진짜 어른이 되기 전에 충분히 실패해 보고 실수해 보고 넘어져 보라고 마련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진짜 모험과 도전이 있는 시기, 그래서 서툴지만 가장 생생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가장 그리운 시간이 청소년기다. 아이에게 그런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 주려면 내가 더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올해 큰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예비 중학생답게 목소리가 굵어지고 잠은 늘어나고 여드름이 생기고 외모에 부쩍 신경을 쓰는 청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썸 타는 여학생이 있는데 썸을 타는 건지 짝사랑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친구들이 동시에 다 싫어하는 친구가 한 명이 있는데 의도해서 따돌리는 게 아니고 진짜 그 친구가 못되게 굴어서 여러 친구들이 그 친구를 싫어하는 건데도 이게 왕따를 시키는 걸까 고민한다. 야동을 본 적은 있지만 자기는 절대 선을 넘지는 않는단다. 선을 넘은 건지 안 넘은 건지 알려면 선을 넘은 영상도 봤다는 거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구체적으로 캐지는 않았다. 그냥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관심이 없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반응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고리타분한 훈계를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엄마가 염려하는 바를 알려주려면 정말이지 신중함이 필요하다.


‖좋다, 나쁘다 편견 내려놓기‖


고마운 건 아이가 엄마한테 숨기는 게 없이 편안하게 자기 감정과 상태를 잘 얘기해 준다는 거다. 아이가 느끼는 어떤 감정에도 내가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이런 편견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만큼 편견을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여러 번 내 마음을 돌아보고 많은 성찰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얘기를 해도 뚜렷한 결론을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엄마도 잘 모르겠어, 정말 어떻게 해야 될까?’ 이렇게 여지를 남겨놓고 대화를 마치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가끔은 그냥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은 적이 많다.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판단해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건 진짜로 어려운 일이다.


사실 정말 좋은 게 뭔지는 나도 모르는 게 맞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정답이 뭔지 확실하다 하더라도 나중에도 그게 진짜 좋을지 지금은 엄마인 나도 모르는 게 사실이다. 뭐든 실패 없이 한 번에 성공하면 많이 기쁘고 좋겠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는 삶보다 느끼는 것도 적고 배우는 것도 적을 거다. 아이가 나중에도 좋았다고, 나는 진짜 내 인생을 잘 살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정답을 위한 안전한 선택만 하도록 강요하는 게 진짜 위험할 일일지도 모른다. 생명력 가득한 내 아이의 진짜 생생한 삶을 위해 청소년이 되어가는 내 아이를 어릴 때처럼 여전히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용감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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