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정서조율 능력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걱정하는 것은 크게 두 부분이다. 하나는 학습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서 공부 잘하고 학교 수업 잘 따라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관계가 좋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친구들과 관계가 안 좋아서 왕따나 학교폭력 문제에 시달린다면 아이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를 잘하거나 혼자서 특별히 어떤 영역에서 뛰어나게 우수하다고 행복할 수가 없다. 무언가 남보다 잘하는 특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 사회성이 우리 아이의 성공을 더 보장해 준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감정코칭에서는 왕따나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대개 학교에서 왕따나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른들은 이 문제를 겉으로 드러난 사건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눈 후 피해자에게는 돌봄을, 가해자에게는 적절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가해자 아이는 늘 억울하고 피해자 아이는 여전히 원망이 사라지지 않으며 양쪽 다 실제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핵심 내용은 배우지 못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갈등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각자 상대편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은데 아이들은 억울함, 원망, 죄책감, 미움 등 부정적인 감정만 더 커진 채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코칭에서는 왕따나 학교폭력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두 경우 모두 정서조율 능력이 아직 미성숙해서 일어난 일로 본다. 그래서 가해자를 나쁜 아이로 보고 처벌에 집중하거나 피해자를 불쌍한 아이로 보고 돌봐 주려 하기보다는 양쪽 모두 정서조율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서조율 능력을 발달시킨다는 게 참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두뇌 중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가장 고도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정서조율이기 때문이다. 정서조율 능력이 곧 사회성이다. 아이의 사회성을 발달시켜 주는 데에는 단계가 있고, 순서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정서조율 능력 발달의 첫 번째 단계는 애착이다. 애착이 필요한 시기는 아이의 태아와 영유아 시기이다. 이 시기 아이한테는 주양육자와의 신체적, 정서적인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아이의 양육자가 자주 바뀌거나 양육자가 너무 바빠서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주거나 양육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해가 된다. 이 시기에 양육자는 항상 편안하고 여유 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너무 쫓기며 살지 않도록 환경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엄마도 자신의 커리어와 경력을 관리해야 하고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하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크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너무 많이 포기하게 되면 결국 언젠가는 아이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주양육자가 엄마가 아닌 할머니나 이모, 아줌마, 아빠 등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뱃속에서 오래 있었던 익숙한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도 계속 자신을 돌봐주는 편이 심적으로 가장 편안하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는 형편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바쁘다면 아이를 케어해 주는 사람과 엄마가 잘 연결되는 것도 방법이고 엄마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엄마의 정서를 돌봐줄 개인이나 그룹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그것도 안된다면 다양한 육아서나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내 멘탈은 내가 스스로 관리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사회성을 발달시키겠다며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단체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마치 과일이 나무에 잘 붙어 있다가 다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것처럼 이 시기의 아이는 엄마와 안정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가 자연스럽게 한 발씩 떨어지는 것이 좋다. 아이가 준비가 되면 스스로 세상을 탐색하러 다른 친구나 어떤 활동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전에 엄마가 먼저 아이를 자꾸 세상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거나 아이에게 자꾸 어려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도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정서조율 능력 발달의 두 번째 단계는 부모는 모델이 되어주고 아이는 연습하는 단계이다. 아이의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시기가 이 단계에 속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친구들과 자주 싸우고 화해도 하고 가끔은 자기가 가해자기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자기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여러 경우를 겪어보고 다양한 감정을 느껴본다. 이때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가이드를 해줘야 하는데 이 가이드는 말로 하는 것보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면서 화내고 야단을 치면 아이는 강자가 약자에게 화를 내도 되는 것을 배울 뿐이다. 또, 엄마가 아이가 받은 피해에 대해 과도하게 억울해하거나 과도하게 원망을 하면서 너는 친구 입장을 배려하고 마음을 풀라고 해봤자 아이는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예를 들어, 내 아이가 친구한테 맞았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내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고 생각해 보자. 그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상대 아이의 엄마와 동료가 되는 것이다. 누가 때렸고, 누가 맞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아이들 둘 다 아직 어리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모르는 미성숙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집중하는 거다. 어른인 엄마들이 한 편이 되어 아이들을 함께 잘 가르쳐주자는 태도가 가장 좋다. 감정적으로 충분히 서로 동요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른들끼리 어려운 관계를 조율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쉽지 실제 상황이 되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고 엄마 역시 내 감정을 다스리고 민감한 상대와 조율을 해 나간다는 문제가 쉽지 않다. 한 번은 내가 아이의 또래관계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동생에게 이 내용을 설명했더니 그 동생은 “결국 내가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너무 어렵네요.”라고 했다. 그게 정답인 것 같다. 아이의 사회성을 발달시키려면 엄마가 인격자가 되어야 하고 그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끝으로 아이의 사회성 발달의 마지막 단계는 지켜보면서 기다려주는 단계이다. 아이가 십 대가 되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 시기가 이 단계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의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직접 도와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제는 아이를 한 명의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 눈에 아직은 독립된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이고 실제로도 아직 진짜 성인이 다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아이를 성인으로 대접해 줄수록 아이도 정말 성장하고 차츰 어른스러워진다.
이 시기에 아이가 겪는 인간관계의 문제들은 그전 시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해진다.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문제까지 끼어드니 안 그래도 복잡한 인간관계가 더 골치가 아파진다. 이때는 괜히 너무 자세히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럽고 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조언을 늘어놓는 것도 잔소리가 될 수 있다. 궁금한 것도 많고 다그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아이가 먼저 고민을 얘기해 주면 고마운 일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잠자코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아이들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생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먼저 뭔가를 물어 온다면 그저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다른 어른들과 대화하듯 편안하게 엄마의 생각을 말해줄 뿐이다. 엄마는 엄마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지만 아이가 내가 말한 대로 할 수도 있고 그대로 안 할 권리도 있다. 어릴 때 이전 단계를 잘 밟아 왔다면 아이와 엄마는 뭐든 서로 의논할 수 있을 만큼 믿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 일은 해결하고 엄마에게 꼭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혼자서는 풀기 어려운 난처한 상황에 봉착하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실수와 실패도 겪겠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삶으로 존중해 주면서 믿고 응원해 주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나도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이 가볍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하다. 예전에 놓친 것이 있다면 그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때는 그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기에 지나간 일에는 너무 미련을 갖지 않기로 한다. 언제나 욕심은 금물인 것 같다.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기다리고 지켜봐 주고 있는 나에게도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 본다. 조벽 교수님 말씀대로 여유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