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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Dec 28. 2021

장남에 홀어머니, 그래도 난 장가갔다!

홀시어머니에 대한 내 마음

우리 시어머니는 혼자다. 홀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남편이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20대 초반 결혼을 하고 아들과 딸을 낳으셨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젊을 때다. 한마디로 청상과부가 되어 사신 날이 남편과 함께 한 시절보다 몇 배 긴 시간이다.


남편과 연애시절, 친구들과 엄마는 연애마저도 반대했다. 그와 나 둘 다 아는 친구들은 좋은 선배이지만 결혼 적령기의 나이에 만나기엔 여러 조건이 마음에 걸린다 여자의 현실적 이유로 반대했다. 엄마는 만나본 적도 없었으면서 '홀어머니에 장남에 대학원에 다니는(직장이 아닌) 키가 작은 선배'라는 나의 여러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였다. 이후 집에서 전화통화를 할 때도 눈치가 보였고, 만나러 나갔다가 좀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더욱 불편했었다. 결국 나는 이런 불편한 만남이 힘들어 이별을 택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벌써 결혼 15주년이 넘었.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귀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막내 사위를 좋아한다.




얼마 전 어머니와 시누, 우리가 모인 가족 모임에서 남편이 십여 년 출장 갔었던 에피소드를  말한다.

"엄마, 홀어머니에 장남이 결혼에 그렇게 안 좋은 조건이었나 봐요~"

으엥? 뭔소리를 할라고? 순간 나는 놀라 남편을 쳐다보았고, 어머니의 눈치를 보았다. 물론 어머니는 연애 초반 우리 집에서 반대해 헤어진 것과 헤어졌던 이유도 알고는 계셨다. 그래도 왜 뜬금없이 이 얘기를 하나 싶어 남편을 보는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옛날에 출장을 갔는데 남자 넷 중에 자신만 결혼을 한 상태였다고 했다. 세 명의 총각들은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셋의 공통점이 '홀어머니에 아들이 하나'였다는 것이다. 노총각 셋의 신세한탄을 듣던 남편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어? 형, 나도 홀어머니에 장남인데~? 나는 장가갔잖아. 심지어 나는 제사도 많아!"

그 형들이 결혼 비결이 뭐냐며 자신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며 엄청 뿌듯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 어머니는 30대 후반, 청상과부가 되셔서 두 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거다.  지금이야 힘들었던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하나의 경험처럼 툭툭 말씀하시지만 6남매 장녀이고, 7형제 중 맏며느리면서 남편 없이 홀시어머니가 계신 시댁과 아이들 건사하시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당일부터 장사, 청소일을 하시며 딸을 시집보내고, 아들을 박사 공부까지 시키셨던 억척스러움과 검소함, 성실함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무뚝뚝하고 무던한 어머니를 좋아한다. 께 살며 하려고 애썼던 며느리를 위해 편하게 살라 먼저 분가를 하시는 어머니셨다. 이제는 나도 전처럼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어머니는 말 그대로 가족이다. 연락이 없으면 없는 대로 별일 없구나 생각하시고, 가끔 안부 연락에는 반가워하시고, 가끔 함께 모이는 자리는 재미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머니께 오셔서 아이들을 챙겨주시고, 며느리가 놀다가 늦게 와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동갑인 딸과 며느리에게 그냥 똑같이 대해 주시며, 며느리가 잘하든 못하든 그냥 믿어주시는 그 마음이 늘 감사하다. 남편이 꼴 비기 싫을 때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라고 이르고, 투정을 부리면 항상 며느리 편을 들어주시기에 늘 든든하다.




아들을 낳고 한 달, 내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어머니는 유방암 3기 말을 진단받았다. 큰 수술을 잘 해내셨고, 수십 번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잘 마치고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당시 우리 모두 많이 힘들었지만 잘 지나갔다.

우리 어머니 아직도 건강하게 일을 하시고, 가끔 며느리에게 용돈도 주시는 멋진 분이다. 일을 하시다가 모르는 영어가 나오면 며느리에게 물어보시는 어머니에게 프라다 장지갑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렸다. 어머니는 그냥 내게 쓰라고 하셨지만, 어머니가 써 주시면 내가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시니 기분 좋게 받아주셨다.


 어머니에 장남이 장가를 갈 수 있었던 건, 당신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홀어머니가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잘 키워주셨기 때문다. 그리고 그 홀어머니가 내 시어머니가 되신 것은 내게 감사한 행운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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