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것이 내 세상

세상을 보는 내 눈을 바꾸다

법구경 첫 구절이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마음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들었던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와 일맥상통한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주요 사상으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즉, 내 마음이 바라보는 대로 내 눈은 세상을 바라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내가 행복한 날에는 숲 속의 새가 노래하는 것이라 하고, 내 마음이 슬픈 날에는 새가 울고 있구나 라고 표현한다.


원효대사와 해골물 이야기가 이를 잘 이야기해 준다.

깨달음을 위해 중국 유학을 가던 도중 한밤중에 너무 목이 말라 아주 맛있게 마셨던 물을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라는 것을 알고 구역질을 하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초등생도 다 알정도이다.


갈증을 해결하며 맛있게 먹은 물도 해골물이요, 헛구역질을 한 물도 해골물이다. 밤사이 달라진 것은 자신이 마음일 뿐이고, 진리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고 원효대사는 신라로 돌아오게 된다.


요즘 세상이 참 어지럽다.

정치 사회면을 보자면 뭐 세상 난리가 난 듯하다. 행복하고 좋은 뉴스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뉴스가 새로고침처럼 계속 올라오고, 그 뉴스에 댓글들은 더 빠르게 올라온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보는 내 눈이고 내 마음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뉴스를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뉴스를 더 많이 볼 수도 있다. 내가 클릭하는 뉴스가 바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마음의 깊은 저 슬픔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왜 나이게 이런 슬프고 불행한 일이 생겨났을까 하느님을 원망했고, 조상님을 원망했고, 세상을 원망했고, 세상이 온통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면 세상을 보기 싫었고, 눈을 감아도 어두운 세상만 보였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자책도 많이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깊은 슬픔을 주었던 그 사건이 가장 행복한 순간도 주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 마음을 바꾸었다.

내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행복과 슬픔을 주러 잠깐 온 인연이었구나 받아들이니 다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법정스님의 말이 빛이 되어 주었다.


시련이 없는 사람도, 시련이 없는 인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면을 바라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주의 기운이 달라지고, 내 삶도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세상일은 정말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마음처럼만 되지 않을 것임도 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내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이 진리를 생각한다.

"내가 보는 것이 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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