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설이고, 난 만두 귀신이다. 소울푸드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만두와 삼겹살을 이야기할 수 있다. 다행히 맛있게 만두를 만드는 맛집이 많이있기에 난 소소한 행복을 자주 누린다.
"설에 어디 가서 만두 사 올까?"
만드는 과정은 나에겐 번거로운 시간이기에 남편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사실 내 마음에는 만두를 사 올 곳을 정해 두고 있었는데, 아차차 괜히 물어봤다. 그냥 내가 예약해두고 사 오면 될 것을...
"만두 안 해? 그냥 당신이 해 줘~ 우리 만들어 먹자"
옆에 있던 딸아이도 이번엔 아빠 편이 된다.
"엄마, 나도 집에서 만든 찐만두 먹고 싶어~!!"
출처: 핀터레스트
딸아이의 말에 난 자주 약해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만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만두소만 준비하고 만두를 만드는 것은 남편이 한다. 하지만 작년에 작은 찜기로 인해 수십 번을 찌는 과정이 더 힘들고 번거로웠기에 큰 맘먹고 5단 찜솥을 샀다. 비록 1년에 한두 번 해 먹는 일이지만 나도 이번 참에 큰 손이 되어보기로 했다.
엊그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찜솥이 왔다. 스테인리스 찜솥은 새것이기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지만 반짝 빛난다고 하여 깨끗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결혼 첫해, 어머니는 새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면 식용유를 묻힌 타월로 몇 번을 문질러 닦아 연마제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 후로 몇 번 스테인리스 냄비며 프라이팬을 사면 거장 먼저 키친타월에 식용유를 묻혀 티브이를 보며 닦아내곤 했다.
스테인리스 제품은 공정 과정에서 거친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연마제를 사용하는데 보통 탄화규소로 이루어진 연마제로 표면처리를 하게 되면 광택이 나게 되어 제품이 더 좋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탄화규소는 암을 유발하는 2a급 발암물질이라 반드시 제거 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오단 찜솥만으로도 설준비 다 한 기분!
스테인리스 냄비를 닦으며 놀라곤 한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깨끗해 보이는데 몇 번을 닦아내도 타월에는 계속 까만 먼지가 묻어난다. 게다가 이 까만 먼지는 우리 몸에서 암을 유발하는 위험한 물질이다.
우리는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것에 먼저 시선이 간다. 그래서 좋아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좋아 보이는 것이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면 제대로 알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의 뉴스는 기분 좋은 뉴스보다 정신 사납고 답답한 소식들이 더 많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으로, 유력한 대선후보들의 다양한 행보와 말, 정책들로 인해 매일 같이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어떤 게 진짜 뉴스인지 가리는 것도 어려울 만큼 너무 많은 정보들이 출처도 불분명하게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가끔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내 눈에 띄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에는 대통령 한번 바뀌면 세상은 금방 바뀌는 줄 알았다. 벌써 나도 몇 번의 대통령 선거를 했고, 내가 투표한 한 표가 대통령이 된 적이 있고, 내가 투표하지 않는 분이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사실, 내가 지지하던 대통령이든, 지지하지 않던 대통령이든 어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그냥 내 위치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내라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지키라는 법을 지키며 살았다.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집값이 어떻네, 물가가 어떻네 목소리들을 높였다.
하지만 내가 몸으로 체감하는 것들은 작은 변화들이었다. 20여 년 전에 출산하신 분들보다 내가 출산하던 시기에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더 많은 혜택을 받았고, 나는 학창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급식이지만, 내 아이들은 급식을 하여 내가 편해졌고, 내 돈 주고 사야 하는 줄 알았던 내 아이의 교복도 지원을 받아 사게 되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내가 정치에서 느끼는 것은 방향이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원한다. 내 아이들은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더 공평했으면 좋겠고, 더 많은 복지제도로 행복해지면 좋겠다. 더 많은 약자들이 세상에 나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대통령 한 명이 5년간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좋은 나라를 위한 작은 시도와 제도변화, 법안들을 만들어가는 1도의 변화가 지금 내 눈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에는 그 각도가 더 커질 것이다.
지각의 변동도 표면에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의 저 밑바닥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과 균열이 생기다가 지각의 변동이 일어났다. 1명의 정치인으로 지각변동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철학이 어느 방향으로 향해서 가고 있느냐는 나의 자식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의 세대의 고생으로 내가 더 편하고 감사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는 세상의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것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것도 보이지 않아 아주 서서히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내가 소울푸드처럼 생각하는 좋아하는 만두를 먹기 위해 보이지 않는 연마제를 닦아내며,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의 후세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떤 현명한 눈으로 더 잘 보아서 보이지 않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