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2살. 아직 내 눈에 아기 같은 아들의 반에 커플이 4 커플이나 있다고 들었다. 25명중에 4 커플이면 8명이고, 남자아이가 10명이라 하니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커플이란다. 난 이야기를 듣고 깔깔거리며 웃고 말았다. 아들은 가끔 친구 커플 이야기를 하며 부럽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은 친구들이 부럽다고 했다. 자신은 언제 모태솔로에서 탈출하게 될지 걱정된다고도 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들이 조용히 할 말이 있다며 방으로 엄마를 부른다.머뭇머뭇하더니 수줍게 말을 꺼냈다. 일요일에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난 "뭐????" 너무 놀라 큰 소리를 내고 아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너무 귀엽고 웃기고 궁금했다.
반 몇 명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뛰어놀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반장이 다른 애들은 가라 하고 자기만 좀 남으라고 하더니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부반장과는 3학년부터 같은 반이었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아들은 소문내도 되는데 누나에게만은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누나는 분명히 자신을 많이 놀릴 거라면서. 아직까지는 그 비밀이 잘 지켜지고 있지만, 곧 누나도 알게 되겠지.
요즘 너무 지치고 마음이 힘들었는데 아들의 연애 소식은 내 마음에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오늘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교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느끼는 그 설렘과 긴장, 기다림을 아들이 시작한 것이다. 카톡이 울리면 후다닥 달려가서 확인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다.
D+7, 교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프사로 함께 저장한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사귀기 전에는 카톡에서
"야~! 오늘 뭐해? 놀이터에서 놀 건데 나올래?"
하던 아이가 사귀자고 한 이후의 대화는 사뭇 달라졌다.
"00아~ 뭐해? 저녁 먹었어?"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몇 마디 나눈 후 대화는 내일 보자!♡로 끝이 났다. 그런 대화를 보는 것 자체가 내게 엔도르핀을 뿜뿜 해서 웃게 만들고 힘이 난다.
"소영아, 00 이가 너 좋아한대~!!"
5학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한마디.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00 오빠가 날 좋아한다고?'
00 오빠는 다른 동네 사는 6학년 전교회장 오빠이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얼굴에 몇개의 여드름이 있고, 키도 별로 안크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키가 크고, 얼굴이 흰 도시남자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학급일로 몇번 마주치고 아주 가끔 학교 놀이터에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근데 그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 오빠 친구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그 오빠를 마주칠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회장 오빠가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고 불편해졌다. 그 오빠의 친구들은 나만 보이면 회장 오빠를 불러댔고,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황급히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을 쳤다. 그리고 가끔 집으로 회장 오빠가 전화를 했다. 할 말이 없어서 몇 마디 이야기 후 정적이 흐르곤 했다. 회장 오빠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짧은 대답만으로 반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우리 반에서 가장 성숙하고 예뻤던 내 친구는 회장 오빠와 내가 친해질 수 있도록 이야기 전달도 해주고, 작은 인형도 전해주는 등 메신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오빠가 뭔가 모르게 두근거리고 불편했고 신경 쓰이지만,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잘 몰랐다.그렇게 두어 달이 흘렀고, 어느날부터 친구는 내게 회장 오빠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고, 회장 오빠도 우리 집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내 친구와 회장 오빠가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배신감인지 서운함인지 후회인지 아픔인지... 예쁘고 성숙한 친구도, 쉽게 마음이 변해버린 회장 오빠도 미워졌다. 그렇게 내가 받았던 첫 고백은 나의 어설픈 감정과 후회감으로 끝이 났다.그리고 그런 비슷한 상황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고백은 내게 하고 사귀는 것은 결국 내 친구가 되는 상황이... 나는 이성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솔직하지 못했고, 용기가 없었으며, 너무나 소극적이기만 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마음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앉아 있다.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언제부터 부반장이 좋았냐고. 친하지 않은 아이라 별로 감정이 없었는데 고백을 받고 사귀기 시작하니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점점 마음이 커져가는 기분이라 한다. 뭔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언제 카톡이 올까 기다려진다고 했다. 기다리지 말고, 궁금하면 먼저 톡을 넣으라고 하니 쑥스럽다고 한다. 카톡에 말을 쓰고 보내지 못하는 것을 나는 재빠르게 보내기를 눌러주었다.
나는 연애에 늘 서툴렀고, 내게 생긴 감정들이 당혹스러웠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내가 아들에게 연애코치를 해주고 있었다. 나의 코칭이 성공할지 모르지만, 난 어디까지나 전지적 여자 시점이니 아들의 여자 친구가 아들과 좋은 마음으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초등시절 연애는 흑역사라 했던 아들의 첫 연애가 행복하고 설렘 가득한 좋은 성장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