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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Nov 11. 2022

학예회에서 물병 세우기를 하겠다고?

아들의 귀여운 엉뚱함을 응원하며

며칠 전부터 아들은 물병 세우기에 재미가 붙었다. 조용해서 방에 살짝 가보면

책상 위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1/3쯤 담긴 생수병에 집중하며 던지고 세우기를 하고 있다.


묘한 도전감이 생겨 나도 몇 번 해 보지만 열 번을 던져도 한 번 세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면 아들은 엄마가 못하는 게 신이 나서

"엄마, 잘 보세요! 난 이렇게 잘해!"

하며 연속으로 자신이 몇 번이나 세울 수 있는지 봐주기를 원했다. 대여섯 번 연속으로 성공하면 의기양양 해지며 열 을 연속으로 세우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우린 이 쓸데없는 놀이를 몇 번이나  했다.




얼마 전, 아들은 요새 학예회에서 반에서 핸드벨을 연주할 건데 엄마가 올 수 있는지 묻는다. 마침 그날 나는 일정 조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아들의 모습도 궁금하지만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여자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갈 수 없는 여건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아빠가 가실 거니까 서운해하지 말라고 아들의 마음을 미리 짐작해 말했다.


그런데 어제 아들은 아빠도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확인차 물었다.

"으응~? 아빠 가실 수 있어. 엄마가 못 가서 서운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아빠가 오셔서 나를 보고 있으면 아빠 신경 쓰느라 내가 연주에서 실수할 거 같아. 아빠 안 오셔도 나 잘할 수 있어."

의외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행여나 자신이 실수를 하게 되면 오랫동안 함께 연습한 반 친구들에게 미안할 거 같다는 거였다.

엄마 아빠 응원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뭔가 다 컸나 싶은 마음에 서운하면서도 대견했다.


그리고 또 아들은 의외의 말로 나를 웃게 했다.

"엄마, 나 학예회 장기자랑에서 물병 던지기 할 거야. 00이랑 같이 하기로 했어, "

어이가 없고 웃겼다. 다른 친구들은 개인 장기 뭐를 하는지 물어보니 태권도 품새, 아이돌 댄스, 노래, 피아노 연주 등 다양하게 잘하고 배운 것을 할 것이라 했다.


나는 물병 세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음... 잠깐 생각하시더니 일단 알았다고 하시고 물병 세우기- 내 이름하고 00이 적으셨어."

그런데 못내 선생님의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더 했다

"만약에 선생님이 물병 던지기 시시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 나 선생님 평생 원망할 거야!!"

나는 그 말에 또 빵 터져 웃고 말았다.




아들은 이제 삼일 남은 학예회에서 시크하게 걸어가며 물병 세우기를 성공할 것이라 한다.

카펫을 두텁게 깔고 양손으로 던지기도 연습하고, 눈감고 던지기까지 연습했다.


감각을 익히니 눈감고 던져도 소리만 들어도 세워졌는지 쓰러졌는지 알아챘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연달아 성공하면 손뼉 치고 쓰러지면 아쉬워하는 것을 반복했다.  아들이 성공하는 것이 쉬워 보여 나도 여러 번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잘하고 성공하는지. 아들은 엄마는 왜 그 쉬운 걸 모르냐고 한다. 잘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서 실패율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운이 좋아 성공할 수도 있지만 운도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거라고...

내일은 학교에서도 연습할 것이고, 주말에 할머니 집 가서도 김장 돕기는 조금 하고 자신은 물병 던지기를 연습할 거라 한다.


이제 학예회에 엄마 아빠가 오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는, 자신의 실수로 친구들에게 미안해질 상황을 생각하는 아이가 벌써 많이 큰 거 같아서  대견함과 함께 묘한 아쉬움이 생긴다.


그리고 비록 물병 던져 세우기 같은 소소한 장기일지라도 친구들 앞에서 한 번에 성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수백 번 연습하며 감각을 익히고, 연습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시간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감사하다. 꼬오오오오옥 단 한 번의 시도로 멋지게 성공하길 응원하고 기도한다.


연습은 지나침이 없다.




아들은 학예회에서 3번 다 멋지게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준비한 친구가 성공하지 못해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친구가 기분이 많이 다운되지 않았고 학예회를 잘 마쳐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물병던져 세우기 같은 소소하고 별거 아닌 장기지만 나름대로 연습하고 고민했던 시간도 아이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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